[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폭이 좁은 단일통로기가 전 세계 장거리 항공노선에서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A321LR·A321XLR 등 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단일통로기들이 본격 투입되면서, 항공여행의 기본 전제도 달라지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중장거리 노선은 대형 허브 공항과 이중통로기가 사실상 독점해 왔다. 이는 기내 통로가 하나인 단일통로기는 기체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장거리 비행에 한계가 있었고, 통로가 둘인 이중통로기는 기체가 커 장거리 노선에 주로 투입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속거리가 크게 늘어난 단일통로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분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 현실이 된 장거리 단일통로기 노선
에어버스에 따르면, 특히 A321XLR은 최대 약 8700km를 비행할 수 있는 단일통로기다. 비행시간으로는 최대 11시간 안팎에 이른다. 기존 단일통로기의 운항 범위가 통상 6시간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운항 가능 시간이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A321XLR을 현존 단일통로기 가운데 가장 멀리 나는 기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장거리 비행성능 덕분에 이전까지 이중통로기만 투입되던 일부 중장거리 노선에도 단일통로기 운항이 가능해졌다. 좌석 수가 많은 대형기를 띄우기에는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던 장거리 노선에도 연료효율이 높은 단일통로기를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직항 노선을 새로 열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단일통로기의 장거리 노선 취항은 이미 현실화됐다. 지난 2024년 11월, 세계 최초로 단일통로기 A321XLR을 중장거리 노선에 투입한 이베리아항공을 시작으로 제트블루, TAP 포르투갈항공, 아조레스항공 등이 A321LR을 활용해 대서양 장거리 노선에 단일통로기를 투입하는 등 장거리 단일통로기 운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들 항공사는 이미 수년간 상용 운항을 이어오며 장거리 단일통로기 운항이 일시적 실험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인디고항공은 지난 1월 인도에서 그리스 아테네를 잇는 직항 노선을 개설해 장거리 단일통로 운항에 합류했다. 델리와 뭄바이에서 출발하는 이 노선은 약 7~8시간이 소요되는 중장거리 노선으로, 과거에는 중동이나 유럽 허브를 경유하거나 대형기를 이용해야 했던 구간이다.
여기에 아메리칸항공도 지난해 12월 A321XLR을 상용 운항에 투입하며, 미국의 대형 항공사 역시 장거리 단일통로기 운항에 본격 합류하며, 장거리 노선에서도 단일통로기 운항이 일반화되는 흐름을 보인다.
◇ 허브공항 중심의 노선 변화
장거리 단일통로기의 등장은 항공편이 연결되는 방식 자체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과거에는 중소 도시에서 먼 국가로 이동하려면 대형 허브 공항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허브에서 승객을 모아 대형기를 띄우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속거리가 늘어난 단일통로기가 등장하면서 중형 도시와 중형 도시를 바로 잇는 직항 노선이 가능해졌다.
승객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달라졌다. 허브 공항에서 여러 차례 환승하며 시간을 쓰는 대신, 기내에 머무는 시간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직항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공사 역시 계절과 요일에 따라 수요 변동이 큰 노선에서 이중통로기보다 운용이 유연한 단일통로기를 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상용기 수요 전망에도 반영되고 있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발표한 장기 수요 전망 보고서를 통해 향후 20년간 새로 필요한 항공기 가운데 단일통로기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어버스는 항공노선이 점점 세분화되고, 허브공항을 거치지 않는 직항 수요가 늘어날수록 운용이 유연하고 비용 효율이 높은 단일통로기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장거리 단일통로기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제작 단계부터 고려된 구조적 변화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 승객 경험을 둘러싼 쟁점
물론 쟁점도 있다. 단일통로기로 8~11시간을 비행하는 것이 과연 편안한가라는 질문이다. 항공 분석 기관들은 비즈니스석의 경우 이중통로기와 큰 차이가 없지만, 이코노미석에서는 기내 체감 피로도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허브 공항에서의 환승 시간을 줄이고 이동 과정을 단순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항의 장점을 더 크게 평가하는 승객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평가를 종합하면, 장거리 단일통로기는 좌석 편의성 논쟁과 별개로 환승을 줄이려는 수요 속에서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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