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레젠스〉의 시작과 함께, 관객은 살 사람을 기다리듯 깨끗하게 비워진 집이 홀로 밤과 낮을 맞이하는 광경을 본다. 보는 이들은 여기가 이야기의 무대라고 소개하는 시퀀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집 곳곳을 훑는 시선은 늘어놓은 무언가를 발견해 달라는 것처럼 꼼꼼하지 않다. 집과 거리를 둔 채 관조하는 것도 아니다. 잠시 멈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우당탕탕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떤 '존재'의 눈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오로지 집을 비추면서도 집이 아닌 것의 존재감을 끼얹은 채로 출발한다.
영화 〈프레젠스〉
이윽고 '존재'의 눈은 집을 소유하려는 가족에게로 향한다. 말끔하게 관리된 모습이 통제광임을 확신하게 하는 여자는 계약을 보채고, 자상한 듯 우유부단해 보이는 남자는 주저한다. 10대 아들과 딸은 관심 없다는 듯 멍한 눈이다. 이들이 이사하는 이유는 수영 특기생인 아들 타일러(에디 머데이)의 학군 문제. 엄마 레베카(루시 리우) 이외에는 그 누구의 의사도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다. "엄마가 하는 일은 전부 널 위한 거야"라고 말하지만 '너'에 딸 클로이(칼리나 리앙)은 빠져 있다.
다른 가족들이 품은 어떤 우울과 비밀을 무시하고 레베카는 전진한다. 남편 크리스(크리스 설리번)은 그런 행동에 질린 듯하면서도 관성적으로 아내를 따른다. 타일러는 무기력에 절여진 듯한 동생 탓에 가족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클로이는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족이 어쩌다 한 번 모이는 식탁은 싸늘할 따름이다.
영화 〈프레젠스〉
이런 가족을 지켜보던 '존재'가 처음 자신을 드러낸 건 클로이였다. '존재'의 시선은 줄곧 가족을 관찰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클로이의 방 벽장 안에서 멈춰 왔다. 그러니까 '존재'와 클로이는 일방적으로 룸메이트가 된 관계다. '존재'는 클로이 주변의 작은 물건들을 옮기며 그가 혼자가 아님을 인식하게 하려 한다. 한 방을 써서(?) 인지, 아니면 절친한 친구의 죽음 탓에 슬픔에 빠진 클로이에게 연민을 느껴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일러가 클로이를 비난하자 '존재'는 방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식으로 모두 앞에 나타난다. 정체 모를 존재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네 가족은 공포에 떨며 발코니로 피신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폴터가이스트 설정으로 호러 장르의 외피를 획득했지만, 〈프레젠스〉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드라마다. '존재'의 순간적 분노를 온몸으로 경험한 가족은 소개받은 영능력자를 집에 들이는데, 그는 각자의 트라우마 때문에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바꿔 말하면 가족 전원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소리다.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의 속살이 트라우마로 곪은 건 극복의 방향이 잘못된 탓이다. 부모는 번듯한 가족과 괜찮은 직업이라는 성취를 일구며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불려 왔지만, 그 치유는 자식의 성취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자식들은 부모가 번듯하다고 생각하는 성취의 모습을 학습당하며, 트라우마를 물려 받고 마는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밑에서 숨 죽여 살던 크리스가 결국 아내 레베카 앞에서도 꼼짝 못하듯이.
영화 〈프레젠스〉
영화는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 '존재'의 시선을 빌려 이 가족의 매끈한 껍질을 하나씩 벗겨낸다. 클로이의 절친이 죽은 건 약물 탓이고, 레베카가 가족 모르게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으며, 타일러는 불법 촬영물 유포에 가담했고, 크리스는 이 모든 걸 방관하면서도 괴로워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존재'다. 결국 '존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존재'가 보는 것이 관객이 보는 것의 전부라는 점이다. 〈프레젠스〉 속 누구도 자신이 가진 비밀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의 시선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관객은 정보와 정보 사이의 간극을 상상으로 메꾸게 된다.
절묘하게도 추측이 필요한 부분은 이야기의 주요 흐름과 크게 관계가 없다. 그래서 '한 가족이 이사 온 집에서 초자연적 존재와 만나 일상이 흔들린다'는 뼈대 외 나머지는 보는 이들의 상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내내 클로이를 돕는 '존재'가 절친 나디아인지, 아니면 100년 된 집에 원래부터 살던 지박령인지 영화는 끝까지 확실하게 발설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선 얼마든지 다른 내용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설정 자체가 스토리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는 것이다.
영화 〈프레젠스〉
〈프레젠스〉는 귀신 들린 집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사람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난리통이 끝나고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는 이 비극의 말미는 일상적 공포 그 자체다. 영화 속 타일러의 친구 라이언(웨스트 멀홀랜드)이 언급한 '베스 자렛'이 이스터 에그임을 알아차렸다면, 로버트 레드포드의 감독 데뷔작인 〈보통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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