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언어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권위 있는 에스놀로그(Ethnologue)의 통계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약 7,168개(2024년 기준)의 언어가 실존한다고 합니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드라마 중 “이 사랑 통역 되나요?” 극중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우리 통역사 선생님!”
“7,100개가 넘는 걸로 아는데요.”
“땡! 아니야.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말을 해.
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먹고, 거꾸로 듣고 막말을 하지!”
2026년 현재 전 세계 인구가 약 83억 명에 육박하니, 결국 이 지구상에는 83억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실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 말은 단순한 문학적 비유가 아닙니다. 인간은 각자의 생애주기, 기질, 부모와의 애착 관계,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필터를 거쳐 자신만의 고유한 ‘개인어(Idiolect)’를 구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쓰지만, 사실은 매 순간 거대한 번역의 장벽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번번이 굴절된 해석을 내놓는 근본적인 이유는 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강조한 ‘도식(Schema)’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도식은 정보를 조직하고 해석하는 뇌 속의 인지적 틀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입니다.
똑같은 "사랑해"라는 단어도 누군가에게는 '조건 없는 헌신'으로 통역되지만, 결핍을 겪은 이에게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고백'으로 오역됩니다. 똑같은 음성 신호를 수신하더라도 각자가 가진 마음속 사전의 정의가 달라서, 우리는 늘 오역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내가 보고 믿는 것만이 유일한 객관적 진실이라고 믿는 ‘소박한 실재론(Naïve Realism)’이 가동되면 갈등은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편향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를 향해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하지만 그때 상대방 역시 자신만의 ‘절대적인 진실’을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수많은 ‘배달 사고’를 일으킵니다. 드라마 속에서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천재 통역사가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연인이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할 때, 언어학적 지식은 이를 '물리적 고립의 요청'으로 번역하지만, 정서적 통역은 이를 "내가 지금 얼마나 지쳐 있는지 네가 먼저 알아봐 달라"는 역설적 신호로 읽어내야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이 업무는 신경을 좀 더 써주세요"라고 말할 때, 어떤 이는 다른건 괜찮은데 이것만 수정하면 되는구나로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무언의 격려’로 통역합니다.
자존감이 낮아진 누군가는 이를 ‘무능에 대한 지적’으로 수신합니다. 단어라는 얄팍한 껍데기에 갇힌 진심을 읽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한 공간에 머물면서도 83억 개의 고립된 섬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토해내듯 뱉은 고백인, "외국어보다 당신이라는 언어가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은 소통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람이라는 언어에는 고정된 문법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의 ‘괜찮아’는 정말로 평온한 상태를 의미했지만, 오늘의 ‘괜찮아’는 차마 말하지 못한 슬픔을 억누르는 비명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컨디션, 그날의 공기, 그리고 우리 사이의 미묘한 기류에 따라 단어의 뜻은 초 단위로 변주됩니다.
이 가변적인 ‘정서적 문맥’ 때문에 우리는 같은 언어권 안에서도 늘 서로에게 이방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역사가 쌓아온 문맥 전체를 공부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하고 고독한 우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유창한 화법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심리적 통역 기술’이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태도는 나의 사전이 결코 표준이 아님을 인정하는 ‘인지적 겸손’입니다. 상대가 내 말을 오해했을 때 즉각적으로 분노하기보다, '저 사람의 인생이라는 교과서에는 이 문장이 다르게 적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여유가 통역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또한, 내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고 마침표를 찍기 전에 “그러니까 당신의 마음은 이런 의미라고 내가 이해하면 될까요?”라고 되묻는 반영적 경청의 기술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는 내 뇌 속에서 멋대로 작동하던 오역의 엔진을 멈추고 상대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는 겸허한 시도입니다.
더불어, 언어적 정보가 대화의 극히 일부만을 차지한다는 앨버트 메라비언의 법칙을 기억하며, 단어 너머에 존재하는 표정, 말투, 태도라는 비언어적 행간을 섬세하게 읽어내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어려운 것은 침묵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진정한 관계란 서로의 언어가 완벽히 일치할 때가 아니라, 서로의 언어가 다름을 처절하게 절감하고 그 간극을 메우려 노력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소통은 우연히 일어나는 행운이 아니라, 지독한 의식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라고 상대를 다그치며 교정하려 드는 오만함 대신, “너의 언어로 그 단어는 어떤 역사를 품고 있니?”라고 묻는 다정함이 우리를 비로소 연결해 줄 것입니다.
진정한 통역이란 언어의 기술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 이면에 숨겨진 상대방의 아픈 세계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용기입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평생에 걸쳐 한 사람의 고유한 언어를 마스터해 나가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도 치열한 공부일지도 모릅니다.
83억 개의 언어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흩어지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오역 없이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당신의 언어는 여전히 나에게 너무나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당신의 세계를 배워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 간절한 마음만이 우리를 고독한 섬에서 불러내 진정한 연결의 바다로 안내할 것입니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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