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17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하면서 국제 사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의 성향이 기존 매파(긴축 선호)와 비둘기파(확장 선호) 중 하나의 노선을 걷는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 시장에선 케빈 워시 후보자가 매파와 비둘기파 노선을 동시에 추구해 '매파적 비둘기'라는 별칭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로 평가받는 '불확실성'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공식 벗어난 '제3의 노선' 케빈 워시 등장에 불확실성 우려 확산, 주요 자산 투매 급증
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지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0.94% 하락 마감했다. S&P500과 다우존스지수도 각각 0.43%, 0.36% 하락하며 동반 약세를 기록했다. 미 증시 하락 여파로 한국 증시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종가 기준 코스피 지수는 5% 넘게 하락해 5000선 아래로 후퇴했으며 코스닥 역시 4% 넘게 내리며 1100선이 붕괴됐다.
안전자산과 가상화폐 시세도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국제 금 가격은 하루 만에 11.38% 급락했다. 은 가격은 31.37% 폭락했다. 비트코인 역시 9개월 만에 7만달러(원화 약 1억원)선까지 밀려났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의 낙폭은 더욱 뚜렷했다. 알트코인 대장으로 불리는 이더리움은 최근 3일 동안 20% 넘게 급락하며 원화 기준 330만원 초반까지 하락했다. 리플은 2400원선을 이탈했다.
이론적으로는 금리 하락에 시중 유동성이 증가하면 증시나 주요 자산의 시세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케빈 워시 후보자의 행보나 발언에 비춰볼 때 '금리 하락에도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투자 자산의 하락이 지난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한 직후 본격화된 것이 결정적 근거로 지목된다.
미국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케빈 워시 후보자는 기준금리 인하와 동시에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축소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직접 억제하는 '실질적 긴축'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과거 연준 이사 시절부터 물가 안정과 통화 긴축 기조를 일관되게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연준은 시장의 노예가 아니다"며 "연준이 증시의 하락을 막기 위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반(反)시장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의 소신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당시 연준 이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연준의 양적완화(QE)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내부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양적완화 정책은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연준이 시장의 국채를 대거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이 시장의 채권을 매입하게 되면 시중 현금이 늘어 대출이 쉬워지고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모두가 시장 구제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조차 실물 경제는 나쁜데 투자 자산만 폭등해 빈부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던 그의 목소리는 당시 미국 금융권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2011년에는 연준의 6000억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에 반대하며 이사 직위를 스스로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2016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도 연준의 확대된 대차대조표가 여전히 시장을 억지로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 내 투자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난 케빈 워시 후보자의 소신이 향후 투자시장에 상당한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의 소신이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주가 하락 시 연준이 유동성 공급으로 시장을 방어해주는 이른바 '페드 풋'(Fed Put)이 약화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시장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불확실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게리 폴린 노던 트러스트 자산운용의 글로벌 투자 전략가는 "현재 시장은 케빈 워시 후보자가 과거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에 대해 언급한 점과 이것이 향후 자산 가격 및 시장 유동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주목하고 있다"며 "그는 시장이 중앙은행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인 만큼 그의 지명은 시장 유동성 공급에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준금리 인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 기조에 발을 맞추긴 하겠지만 과거 행보로 미루어볼 때 시장의 유동성을 억제하는 정책을 추가로 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경제 데이터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연준의 자산 규모는 약 6조6000억달러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전(약 4조달러)보다 훨씬 큰 수치로 연준은 이를 '충분한 지급준비금(Ample Reserves)'로 정의하고 있다. 현재 제롬 파월이 이끌고 있는 연준은 지급준비금과 자산 규모를 관리하면서 시장 유동성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 목표를 유지해 오고 있는 상태다.
국내 전문가들도 오는 5월 케빈 워시 후보자가 연준 의장에 정식 취임하게 되면 시장을 예측하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행보로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어떤 카드를 꺼낼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김용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케빈 워시 후보자의 연준 의장 취임 전까진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달러 등 화폐 가치 약화에 대응해 금·비트코인 등 대체자산으로 이동하는 것) 관련 역풍과 시장금리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자들의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설명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핵심 동력은 '저금리' 그 자체보다 풍부한 유동성이 바탕이 됐었다"며 "반대로 자금 유동성이 회수되는 국면에서는 금리가 안정적이더라도 주가가 압박을 받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케빈 워시 체제의 연준이 출범하면 당분간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는 만큼 증시와 금·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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