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관세의 '정산' 시점이 임박하면서 한국 수출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늦어지는 가운데, 관세 환급 여부를 좌우할 실무 절차가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판결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선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관세 정산은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수입자가 신고·납부한 관세액을 사후 검토해 최종 확정하는 절차다. 통관일로부터 통상 약 314일 뒤 이뤄진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초부터 부과된 한국산 제품 관세는 이달 중순을 전후해 순차적으로 정산 단계에 들어갈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4월 5일부터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10%의 국가별 관세를 적용했고, 같은 해 8월 7일 이후에는 이를 15%로 상향했다. 당초 25%까지 예고됐던 관세율이 협상 결과 낮아졌지만, 누적된 관세 부담은 기업들에 상당한 비용으로 작용해 왔다.
문제는 정산 전과 정산 후의 환급 절차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정산 이전에는 수입신고 내용을 수정하는 사후정정신고(PSC)를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환급을 신청할 수 있다. 서류 보완과 정정만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시간과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정산이 완료된 이후에는 CBP의 결정을 상대로 이의신청을 제기하거나,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환급이 가능해진다. 절차는 복잡해지고 처리 기간도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길어질 수 있다.
환급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수입신고자, 즉 IOR(Importer of Record)다. 미국 관세 제도상 환급 청구 권한은 실제 관세를 부담한 주체가 아니라 해당 통관 건에서 IOR로 신고된 자에게 있다. 한국 수출기업이나 현지 법인·자회사가 IOR로 통관한 경우에는 직접 환급 청구가 가능하지만, 미국 거래처가 IOR인 경우 한국 기업은 직접적인 환급 신청이 불가능하다.
특히 관세지급인도조건(DDP) 거래라고 해도 주의가 필요하다. 수출기업이 관세 비용을 부담했더라도 IOR가 미국 수입자로 돼 있다면 환급금은 수입자에게 귀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산을 앞둔 기업들은 통관 서류를 재점검하고, 환급금 배분에 대한 계약상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IEEPA 관세의 적법성을 둘러싼 미국 내 사법 판단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앞서 국제무역법원과 항소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지적하며 관세 부과가 무효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지만, 사건은 현재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대법원은 구두변론 이후에도 선고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어 판결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관세 부과의 위법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효력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한정될 가능성도 변수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자동 환급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미 정산이 완료된 통관 건은 별도의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산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환급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일부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미국 법인을 통해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IEEPA 관세의 위법성과 기납부 관세 전액 환급을 요구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다만 법원이 대법원 판단 전까지 신규 환급 소송을 정지하기로 하면서, 관련 소송들은 현재 계류 상태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대응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정산이 시작되기 전 수입신고자 구조를 점검하고, 정정신고 가능 여부를 검토하며, 필요할 경우 이의신청과 소송 전략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관세·통관 실무 인력이 부족해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지원기관과 전문 자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 판결을 기다리다 정산 시점을 넘기면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든다"며 "환급 여부는 판결이 아니라 준비 정도에 달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관세 정산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대응 역량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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