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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법률개정 시 사후평가 반영…英, 법 시행 3~5년 후 의무평가
사후입법영향평가는 시행 중인 법률의 운영 결과를 사후적으로 평가해 입법 목적 달성 여부와 예기치 못한 효과를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정·보완 또는 폐지의 필요성과 입법 대안을 도출하는 절차다. 동시에 입법의 필요성, 비례성, 효과성, 명확성, 접근 가능성, 일관성 등 이른바 ‘좋은 입법’의 요건을 실제 법률 집행 결과를 토대로 검증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법 제정 이후 약화되기 쉬운 책임성을 보완하고, 법률 효과에 대한 조직적 학습을 축적하며, 입법 전반에 대한 신뢰와 정당성을 높인다. 결국 사후입법영향평가는 단순한 평가 기법을 넘어 입법의 품질을 관리하는 제도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입법의 품질을 높이는 수단으로는 사전입법영향평가도 중요하지만, 두 제도가 모두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는 사후입법영향평가를 먼저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후평가는 법률이 실제로 집행되는 과정에서 정책 효과, 비용, 부작용에 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제도 설계와 운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후평가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분석 결과는 후속 입법에서 어떤 요소를 사전에 검토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사후평가를 먼저 정착시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사전입법영향평가의 정밀도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후입법영향평가를 잘 활용하는 곳이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은 법률 개정과 의회의 집행부 통제를 위한 증거 기반 확보를 위해 사후입법영향평가(ex-post evaluation)를 정교하게 운영하고 있다. 집행위원회가 연간 입법 계획에 따라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면, EPRS는 해당 법률의 운영 실태와 정책 효과를 분석한 이행평가서를 사전에 작성해 유럽의회 상임위원회에 제공한다. 아울러 현행 법률의 집행 여부, 집행 비용, 이해관계자 불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 상시 점검표(rolling checklist)도 함께 제공한다. 상임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집행위원회에 대한 감시 강도와 방식, 추가 분석 필요성을 판단하고, 심층분석이 필요하다고 의결하면 EPRS가 유럽이행평가(EIA)를 수행해 그 결과를 제출한다.
영국 역시 사후입법영향평가(post-legislative scrutiny, PLS)를 통해 법률의 실제 작동 여부를 점검한다. 영국은 2005년 이후 국왕의 재가를 받은 모든 법률에 대해 집행 담당 부처가 통상 3~5년 이내에 사후입법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상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PLS는 형식상 정부의 자기 점검 성격이 강하지만, 의회는 이를 토대로 추가 조사나 심층 평가 필요성을 판단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정책 학습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평가 결과는 후속 입법의 실질적 근거로 활용된다. 정부가 사후 평가를 수행하고, 의회가 이를 감시·활용하는 역할 분담 구조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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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입법 전반 포괄 사후평가제 없어…단계적 도입 바람직
반면 한국은 일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례 평가와 ‘행정기본법’에 근거한 행정부 중심의 사후입법영향분석만 존재할 뿐, 국회 입법 전반을 포괄하는 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1년 이후 총 81건의 사후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이는 법적 제도에 기반한 체계라기보다는 기관 차원의 연구 활동 성격이 강하다. 그 결과 성과의 지속적 축적과 제도 확장성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 입법 환경은 이미 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단계에 들어섰으며, 현재와 같은 사후입법영향평가 제도의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 제15대 국회 이후 법안 발의 건수는 급증해 제21대 국회에서는 2만 5000건을 넘어섰고, 제22대 국회에서는 하루 평균 26.2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입법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는 거의 정점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법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기존 법률이 실제로 어떤 성과와 한계를 보였는지, 새로운 입법이 정말 필요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이다.
물론 모든 법안을 발의할 때 사후입법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의 법안 발의 속도를 고려하면 획일적 제도가 오히려 입법을 경직시키고, 필요한 입법의 출현을 어렵게 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발의자가 원하는 경우 사후입법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거나, 영국식 ‘정부 평가-의회 감시’ 모델을 도입해 정부 부처에 사후 평가 보고 의무를 부과하고 국회는 이를 토대로 선별적·집중적 감독을 수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식 상시 점검 체계를 참고해 국회입법조사처가 법률 집행 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분석하고, 상임위원회의 전략적 판단을 지원하는 구조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늘 그러하듯 제도 설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후입법영향평가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이를 실패 책임을 추궁하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입법 성과를 검증하고 다음 입법을 개선하는 학습 장치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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