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어떻게 벽을 통과하는가.
우리는 모두 변화의 벽 앞에 선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벽을 그저 바라보고 어떤 이들은 끝내 그 벽을 지난다. 특히 예술인이 그러하다.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필자는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같은 시대를 살며 누구나 불안과 한계를 마주하지만 어떻게 많은 예술인은 끝내 멈추지 않고 그 벽을 통과하는가. 창작을 향한 열망이나 상상의 힘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들과 오래 이야기할수록 상상력은 번뜩이는 재능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막힌 지점에서 돌아서지 않는 집요함, 다른 길을 끝까지 묻는 질문,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오기 위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실패를 견디는 인내. 그 모든 것이 상상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인상 깊었던 것은 기술을 대하는 예술인의 방식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위협과 구원의 이분법으로 나누지만 예술가들은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룬다. 인공지능(AI)과 미디어, 데이터와 가상공간은 찬반의 대상이 아니라 도구이자 협업자다. 그래서 그들의 상상력은 공중에 뜨지 않는다. 철저한 공부와 탐구를 통해 벽을 그저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성질을 분석해 그 위에 새로운 문을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그 문을 열어 벽을 통과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문을 열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필자는 다시금 ‘팔걸이 원칙’을 떠올린다. 창작과 권력, 예술과 제도 사이에 유지돼야 할 건전한 긴장과 거리의 원칙이다. 그 거리가 있어야 상상은 숨 쉬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은 성급한 판단으로 닫혀 버리지 않는다.
위험은 행정과 정치가 스스로를 과신하는 순간이다. 현장에서 길러진 예술인의 감각과 그들의 삶의 영역까지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다. 알고 있다는 착각과 평가의 권위가 앞설수록 제도는 ‘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앞’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 조급한 기준과 체점은 예술가들이 벽을 넘기도 전에 멈추게 하고 사회의 상상력은 그만큼 좁아진다. 굳이 체점이 필요하다면 그 주체는 제도가 아니라 현장이어야 한다. 현장에서 창작을 이어온 예술인들이 경험으로 정책과 구조를 바라보고 그 감각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다수의 취향과 권위가 먼저 도착하는 순간 벽을 만드는 쪽은 예술가가 아니라 정책이 된다. 먼저 도착해야 할 것은 판단이 아니라 존중이다. 아직 미완이고 실패를 품은 그 시간을 감내하고 기다려 주는 일, 그 과정을 신뢰하는 일. 그것이 이 사회의 한계를 넓히는 가장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힘일 것이다. 기술을 협업으로 활용할지 혹은 자신의 예술 안으로 들이지 않을지 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그 존중의 태도와 철학은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예술인들도 기다리고 있다. 예술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의 자유이자 미래의 언어로 바라볼 수 있는 행정과 정치인을. 지금까지도 존경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 정신을 이어갈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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