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갬성(감성)이거든요. 플래시 터뜨리면 얼굴이 하얗게 날아가는데 그게 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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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메라가 달의 표면까지 찍어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화질이 안 좋은 카메라를 찾아 중고 장터를 헤맨다. 바야흐로 빈티지 디카의 전성시대다.
니콘 쿨픽스, 소니 사이버샷, 캐논 익서스…. 서랍 한구석에 전자 폐기물로 분류해뒀던 이 이름들이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와 당근에서는 귀하신 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만~3만 원이면 샀을 이 구닥다리 기기들은 현재 15만원에서 비싸게는 30만원을 호가한다. 뉴진스 등 아이돌이 뮤직비디오 소품으로 들고 나오면서 시작된 유행이라지만, 단순히 따라 하기라기엔 열풍이 너무 거세다.
핵심은 CCD 센서다. 요즘 카메라가 쓰는 CMOS 센서와 달리, 2000년대 초반 디카에 쓰인 CCD 센서는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자글자글한 노이즈를 만들어낸다. 기술적으로는 분명 퇴보이자 단점이지만, Z세대에게는 이것이 돈 주고도 못 사는 필터가 됐다.
왜 하필 지금일까. 전문가들은 지나친 선명함에 대한 피로감을 원인으로 꼽는다. 최신 스마트폰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AI가 개입한다. 어두운 곳은 밝게, 피부는 매끈하게, 색감은 쨍하게 강제 보정한다. 결과물은 완벽하지만, 거기엔 빈틈이 없다.
반면 옛날 디카는 솔직하다.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흔들리고, 밝으면 하얗게 번진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박히는 주황색 날짜(26 01 29)는 촌스럽지만 확실한 그날의 기록이다. 결국 이들이 소비하는 것은 카메라 성능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미학이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완벽하게 세팅된 디지털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오히려 인간적인 해방감을 주는 셈이다.
SD카드를 리더기에 꽂고 PC로 옮겨야만 사진을 볼 수 있는 번거로움조차 이들에겐 즐거운 의식(Ritual)이다. 찍자마자 SNS에 올리고 소비해버리는 인스턴트 사진이 아니라, 집에 가서 열어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설렘. 500장밖에 못 찍는 적은 용량 때문에 셔터 한 번을 신중하게 누르는 경험. 2026년의 청춘들은 그 불편한 낭만을 사기 위해 기꺼이 20만원을 지불한다.
혹시 집 안 어딘가에 먼지 쌓인 쿨픽스가 있다면 꺼내보시라. 당신에게는 추억 속 고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이폰보다 빛나는 힙한 보물일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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