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미국의 우생학'·'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미국에서 아이큐 검사를 받은 최초의 집단은 1912년 뉴욕 엘리스섬에 내린 이민자들이었다. 심리학자인 헨리 허버트 고더드는 이들 중에서도 삼등 선실을 타고 온 사람들만 대상으로 검사를 한 후 전체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헝가리인, 러시아인 이민자의 80% 이상이 '정신박약자이며 결함이 있는 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류 투성이였던 고더드의 엘리스섬 아이큐 검사는 미국이 1924년 이민자 수를 국가별로 엄격히 제한하고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이민법을 도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우생학'(eugenics)이라고 하면 흔히 나치 독일을 떠올린다. 유전의 법칙을 기반으로 인류 '개량'을 연구하는 우생학은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한 근거였다.
그러나 우생학이 나치 독일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미국 역사학자 N.오르도버는 책 '미국의 우생학'(오월의봄)에서 19세기 말부터 미국 내에서 활발히 이뤄진 우생학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이민 제한, 단종법 등의 역사를 서술했다.
'정신박약'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이민자 추방의 근거를 제공한 고더드처럼 우생학자들은 "정당한 연구 목적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사회계층 구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자들은 시각적, 수학적 증거까지 제시하며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한 혐오와 차별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우생학이 겨냥한 것은 이방인만이 아니었다. 동성애 '치료'를 위한 연구나 가난한 여성, 장애인에게 집중된 단종수술 등은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는 대신 개인이나 집단은 '결함'을 강조한 우생학의 영향이었다.
우생학이 정당한 학문이 아닌 유사과학으로 치부된 지 꽤 오래됐지만, 지금도 미국 지도자들의 입에선 우생학적 시각이 담긴 발언들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들이 '나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발언했다. 14명의 아이를 둔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는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21세기 미국에도 우생학의 망령은 여전히 떠도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궁리)에선 한국 학자들의 시각에서 미국 내 인종,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다 학술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미국사학회 소속 학자들이 미국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사를 '인종'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논문들을 엮었다.
"미국의 역사는 곧 인종의 역사"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미국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종주의가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로 회귀한 듯한 현재 미국의 모습에 '과연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회의가 들 수 있지만, 자국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 학자도, 멀리서 미국을 지켜보고 있는 한국 학자도 모두 희망적인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오르도버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 공동체와 운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필자 중 한 사람인 양홍석 동국대 교수도 "트럼프의 백래시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며 "반성을 제대로 배운 이 나라의 교양 있는 다수 대중"에게 기대를 걸었다.
트럼프 이민정책에 반대하며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최근의 시위가 그 희망의 증거일 것이다.
▲ 미국의 우생학 = 김현지 옮김. 560쪽.
▲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672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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