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손연재 신유빈과 어깨 나란히,
당구의 메이저 종목 희망 안겨,
프로-아마 선순환 구조 이뤄져야
윤곡상은 고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국 여성체육 발전을 위해 1989년 제정한 한국 최초 여성 스포츠 시상식이다. 윤곡여상체육대상으로 시상하다가 2013년부터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으로 확대, 개편했다. 37년의 역사 만큼이나 여성 체육인에게 영예로운 시상식이다. 그 동안 200여 명에게 대상, 최우수선수상, 우수상, 지도자상 등을 시상했다.
김가영은 당구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윤곡상 시상대에 섰다. 그것도 최고 영예인 대상을 품었다. 초대 수상자인 박신자(농구)를 비롯해 김연아(피겨스케이팅) 기보배(양궁) 손연재(리듬체조) 지소연(축구) 오연지(복싱) 최민정(쇼트트랙) 신유빈(탁구)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양궁) 등 대한민국 체육 역사를 빛낸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당구 선수 최초라는 타이틀을 넘어 비올림픽 종목 선수로 처음 받는 대상이다. 김가영의 수상은 당구가 메이저 종목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긴 사건과 다름이 없다.
당구장은 지난 2017년 말 실내 체육시설 금연법 시행으로 기존 담배 연기 자욱한 시절을 걷어내고 최신식 점수판은 물론 애플리케이션까지 활용,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자연스럽게 주요 당구대회와 선수에게 대기업 후원이 따르며 한 단계 거듭날 계기를 마련했다. 이에 발맞춰 2019년 프로당구 PBA LPBA가 출범하고 연착륙에 성공, 흥행 가도를 달리며 종목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당구계는 김가영이 윤곡상 대상을 품는 데 이런 흐름이 긍정적인 요소가 됐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착시에 빠져서는 안된다. 윤곡상이 김가영에게 대상을 준 본질적 이유는 미지의 영역에서 절대적 커리어를 쌓아서다. 중학교 2학년 때 포켓으로 당구에 입문한 김가영은 10대 시절 국내 무대를 접수하고, 고교 졸업 이후 대만 무대를 거쳐 ‘포켓의 본고장’ 미국까지 진출했다. 세 차례 세계선수권(2004 2006 2012년) 우승, 두 차례 아시안게임 은메달(2006 2010년) 등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또 포켓 역사상 최초로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다. 그러다가 프로당구 출범과 함께 LPBA에 도전장을 던졌다. 7시즌간 최다 우승 기록(17회)을 세우는 등 3쿠션 무대까지 섭렵, ‘당구 여제’로 거듭났다.
포켓은 3쿠션과 테이블 크기부터 큐까지 다르다. 두 종목을 모두 지배하는 건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김가영의 커리어는 국내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어린 나이부터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적인 행보로 프로 생리를 체득하고, 자기 당구를 명확히해서다.
어느 종목이든 ‘직업 선수’, 프로의 가치는 단순히 경기력으로만 매기지 않는다. 자기 관리부터 비전 수립, 팬과 미디어 대응까지 프로스포츠의 구성 요소를 두루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당구계에서 프로 타이틀을 지녔지만 이런 개념을 인지하고 접근하는 선수는 매우 드물다.
시스템의 결여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당구협회와 대한당구연맹이 상생 모드로 전환하지 않고 지금처럼 각자의 길을 걸으면 ‘제2. 제3 김가영 신화’는 쉽지 않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자라는 법이다. 프로의 토대가 되는 건 아마추어다. 아마추어 무대가 탄탄하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내놓을 때 좋은 재능을 지속, 발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해 프로로 진출해야 하고, 프로는 시대 흐름에 맞는 경기 모델과 마케팅을 끌어내 종목 가치를 올려야 한다. 이게 곧 다시 아마추어 무대의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프로와 아마의 전략적 상생을 통한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당구가 진정한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당구인도 메이저 종목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김가영의 대상 수상이 개인의 영광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용일 칼럼니스트/스포츠서울 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