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이곳 어때요? 30년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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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이곳 어때요? 30년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바자 2026-01-31 08:00:04 신고


SINCE 1996


하나의 공간을 지키는 일의 숭고함에 대하여. 30년의 시간을 쌓아온 서울 근교 네 곳의 문화 공간에서,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들여다봤다.


신사하우스

신사동 가로수길, 1996년 지어진 오래된 다세대주택 두 동은 4년 전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철거 예정일을 한 달 남기고 그 시간 동안 30여 개의 원룸을 작가들에게 내어준 전시가 이목을 끌었고, 공간을 보존해 달라는 관람객들의 요청에 따라 3년여간 다양한 전시를 이어갔다. 최근 신사하우스 앤드류 박 대표는 건축가 승효상이 이끄는 이로재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레노베이션을 마쳤다.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보다 주변 지역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도 예술과 브랜드 전시에 최적화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붉은 벽돌 외벽은 새하얗게 탈바꿈했고, 두 건물의 동선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오픈 전 미리 둘러본 간결한 건물 내부에는 기존에 나 있던 창의 자리나 타일이 눈에 띄었다. 전시 층에 방을 나누는 골조는 살려 두었고, 외벽에도 새롭게 증축한 부분과 옛 건물이 포개진 흔적을 남기며 간결하지만 유쾌한 디자인 방식으로 풀었다.

올봄, 그동안 신사하우스에서 전시한 사진가와 작가들을 초청해 그룹전을 열며 소프트 오프닝을 준비 중이다. 1층 로비에는 상시 신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며, 정식 오픈은 가을 서울 아트위크 기간에 할 계획이다. 고심하고, 품을 들이며 구태여 노후한 건물의 조각을 보존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담당자와 신사하우스 앤드류 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공간은 시간을 미화하지도, 헤리티지를 연출하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이번 레노베이션은 시간을 멈추는 작업이 아니라 시간을 편집하는 작업이었죠. 모서리들, 새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던 비례, 그리고 새로움보다 반복에서 오는 편안함. 공간은 현재적이지만, 막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재개발이 도시의 기억을 빠르게 초기화하는 서울에서, 살아온 흔적을 지니면서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162길 27


은평문화예술회관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재건립된 이후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역 문화 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 아래 각 자치구마다 예술회관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6년 11월 문을 연 은평문화예술회관 역시 그 시절 아트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성을 곳곳에 지니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돔 형태의 개방형 천장 덕에 로비에 햇살이 가득 든다. 빛바랜 곡선형 계단, 레트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둥 디자인이 정겨운 인상을 남긴다. 몇 해 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마포에서 은평구로 거처를 옮긴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은평문화예술회관은 건물 뒤편의 녹번서근린공원이 건축물을 감싸는 듯한 배치로 구성되어 있어요. 북한산이 자리한 은평의 자연적인 특성을 회관을 설계할 때도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샛별 정책홍보 담당자는 말한다. 로비 뒷문을 따라 소나무가 푸릇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야외 숲속극장이 나온다. 봄, 가을 인형극과 아동극이 열리는 이곳에는 동그랗게 둘러싸인 좌석에 가족 관객이 모인다.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석 등을 갖추며 레노베이션을 마친 중극장은 두 해째 서울국제무용축제의 무대가 되었고, 은평문화재단의 상주 클래식 단체 ‘알테무지크 서울’의 바로크 음악 연주회와 워크숍이 열린다. 세대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공간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낡고 누른 때가 쌓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은평문화예술회관은 시간이 쌓일수록 주민들의 손에서 윤기 나도록 다듬어지는 곳이다. 방문객의 메시지를 부착한 로비 한편에 빼뚤한 글씨체의 메모가 눈에 띄었다. “플루트 최고! 정기연주회 파이팅!”

서울시 은평구 녹번로 16


레스보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1996년 신촌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는 레즈비언 및 성소수자들에게 그런 장다. 레즈비언 인권 단체 ‘끼리끼리’에 의해 탄생한 바는 공덕, 홍대를 거쳐 현재는 이태원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료 상승과 운영난을 겪다가, 3대 사장인 레즈비언 활동가이자 ‘명우형’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윤김명우 씨에 의해 다시 활기를 찾게 됐다. 몇 해 전 레스보스라는 공간을 지켜가는 그의 삶이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에 담긴 적 있다. 여전히 새벽에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낮에는 LGBT 활동가로서 공연이나 행사에 참여하고, 밤에는 다시 출근하며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한다. “14살 때 강제로 아우팅을 당하고 혼돈의 시절을 보냈어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필요하다는 걸 필연적으로 알았죠. 레스보스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이곳에서 위안을 얻어온 사람이기에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고 전 재산을 털어 상호 값을 치렀죠. 일반 음식점으로 개업을 해, 10대 청소년 친구들에게 음료와 음식을 대접했어요. 10~20대 때부터 본 친구들이 지금은 40~50살이죠. 번듯한 직업을 갖고 옆 테이블 친구들 음료까지 계산해주고 그러고 가.” 한남동 대로변 개발로 인해, 바는 올봄 이전을 앞두고 있다. “올해 딱 일흔이 되는데, 75살이 되면 그만두려 했거든요. 근데 이사 가야 하니 별수 있나. 또 한 번 도전해야지, 뭐.” 어떤 공간은 자리를 지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겉모습은 변화할지언정,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레스보스의 형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34-1


소전미술관

경기도 시흥 소래산 초입에는 한 수집가가 일평생 모아온 예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자리한다. 극동건설 창업자이자 장학재단 소전재단을 이끈 김용산 회장은 고향에 마련해둔 2층 규모의 공간을 1996년 도자기 중심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대중에 개방했다. 지난해부터는 인왕산 초소책방, 아트시네마 등을 운영하는 문화공간 리테일 회사 ‘더숲’에 한편을 임대해 북카페도 겸하고 있다. “수장고에만 작품을 보관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에 오랜 미술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시도였죠. 본래 사교와 별장의 용도로 지은 대저택이기에, 원목 마루부터 지붕까지 그 시절 최고 좋은 자재를 사용했어요. 2층 테라스에서 보는 정원 풍경과 시간이 쌓일수록 멋스러움이 스민 건축물의 디테일도 감상해보길 추천합니다.” 손태영 소전미술관 사무국장의 말이다. 고려시대 흐드러진 버드나무 무늬가 서정적인 청자상감 술병부터 조선시대 분청 기법으로 만들어져 술을 담던 원통형 그릇인 장군, 19세기 장수와 행복을 염원해 성행하던 청화백자. 수십 점의 도예 작품들은 분기별로 수장고에서 교체되어 방문할 때마다 색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 고미술품이 주를 이루지만 호안 미로의 석판화, 부르델의 청동 조각,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려진 프랑스 세브르 도자 장식이 더해진 영국 브로드우드&선즈 사의 앤티크 업라이트 피아노 등 지극히 사적인 컬렉션이기에 더욱 흥미를 돋우는 작품들도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배치돼 있고, 족히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미술 도록들도 무심히 책장에 꽂혀 있다. 어느 수집가의 사적인 초대를 받은 것처럼, 시간이 쌓인 공간으로 호젓한 사색을 원하는 이들이 홀로 혹은 삼삼오오 모인다.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길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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