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한국 경제가 고금리 국면에 장기간 머무를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멈춘 가운데 원·달러 환율 변동성까지 낮아지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정책적 이유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금융안정 부담까지 겹치며,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연중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 연중 동결 가능성 확대…“지금은 내릴 이유가 없다”
오는 2월 26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는 현 수준인 연 2.50%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지난 1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통화정책 운용 기조를 ‘추가 완화’가 아닌 ‘유지’ 쪽으로 분명히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2월 동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 나아가 상반기, 나아가 연내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물가가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 흐름을 보이고 있고, 성장률 역시 급격한 둔화 국면을 벗어나면서 기준금리를 서둘러 낮출 정책적 필요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임환열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성장·물가·환율 여건을 종합하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실익이 크지 않다”며 “최소 6개월 이상, 경우에 따라 올해 내내 기준금리가 유지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미국 인하 중단·환율 안정…금리 인하 부담만 남았다
한은의 판단을 제약하는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미국 통화정책이다. 미 연준은 최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며, 지난해 이어졌던 인하 흐름을 중단했다. 물가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하고 고용 시장이 견조한 상황에서, 추가 인하에 나설 명분도 약해졌다.
이 같은 흐름은 한은의 선택 폭을 좁힌다. 만약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경우 한·미 금리차는 더 확대된다. 이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화 약세 가능성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통화 완화로 얻는 경기 부양 효과보다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구조다.
환율 변수 역시 한은의 인하 압박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때 1500원 선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30원대까지 내려오며 변동성이 크게 줄었다. 외환당국의 안정 조치와 함께 달러 강세가 진정된 영향이다.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인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경기·금융 여건 모두 동결 쪽…“사실상 인하 사이클 종료”
국내 경기 흐름도 기준금리 인하의 시급성을 낮추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요 회복이 수출을 지탱할 것이란 판단이다. ‘0%대 저성장’ 우려가 완화되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필요성도 한발 물러섰다.
반면 금융안정 부담은 여전히 크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격 상승세는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개인투자자와 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해외 투자 확대도 지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주택가격 상승을 자극하거나 원화 약세를 통해 외환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성장·물가·환율·금융안정이라는 한은의 핵심 판단 변수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를 정당화할 만한 요소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로 동결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해지고 있다.
김명실 IM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중시하는 주요 지표에 큰 변화가 없다면 현재 국면은 인하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며 “이번 사이클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보는 시각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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