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6세대 전투기 경쟁이 기체 성능보다 인공지능(AI)과 유무인 복합운용, 센서와 네트워크를 어떻게 하나의 전투체계로 묶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6세대 전투기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방식을 선택한 반면, 한국은 KF-21을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다른 출발점이 향후 공중전투 능력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30일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6세대 전투기 개념은 고도화된 스텔스와 적응형 엔진, 지향성 에너지 무기 같은 기체·무장 성능을 포함하지만, 실질적 승부처는 AI·센서·네트워크 융합에 있다.
각종 센서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아 분석하고, 조종사를 대신해 인공지능(AI)이 위협을 판단하거나 무장 운용을 돕는 방식이 6세대 전투기의 기본 구상이다. 여기에 유무인 편대는 물론 위성과 지상 자산까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장을 통합 관리하는 ‘전투 운영 체계’로 설계된다. 이 과정에서 유인 전투기는 혼자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무인기와 함께 움직이며 장거리 타격과 생존 능력을 동시에 높이는 지휘 중심 플랫폼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 미국·유럽, 백지에서 새로 개발
현재 군사 강국을 중심으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백지에서 시작한 새로운 기체를 개발 중이다.
우선 미국은 공군용과 해군용 6세대 전투기를 따로 개발하고 있다. 공군은 ‘차세대 공중우세(NGAD)’ 프로그램 안에서 F‑22 후속 전투기로 보잉 F‑47을 선정해 2030년대 초·중반 실전 배치를 목표로 시제기를 제작 중이며, 2028년 첫 시험비행을 계획하고 있다. 2025~2026회계연도에는 F‑47과 이를 지원할 협동전투기(CCA) 개발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유인 전투기+무인 전투기 편대’ 개념을 구체적인 전력 구조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해군은 별도의 F/A‑XX 사업으로 F/A‑18E/F 전투기와 EA‑18G 전자전기를 대체할 6세대 함재기를 추진 중이다. 이 기체는 F‑35C와 함께 항공모함에서 운용되며, 더 긴 항속거리와 강화된 스텔스·전자전 능력, 다수 무인기를 지휘하는 능력을 갖춘 ‘차세대 함재기’를 목표로 한다. 2030년대 후반 전력화를 염두에 두고 2025~2026년부터 개발·계약 예산이 본격 반영되면서, 공군 F‑47과는 독립된 축의 6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도 유로파이터와 라팔 다음 세대를 아예 새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일본·이탈리아가 함께 추진하는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lobal Combat Air Programme, GCAP)’은 일본 F‑2와 영국·이탈리아의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대체할 6세기 전투기를 2035년까지 실전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3개국이 공동 법인 ‘엣지윙(Edgewing)’을 설립한 데 이어 센서·적응형 엔진·유무인 복합운용 기술을 한 기체에 통합하는 개발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이 추진하는 ‘미래전투항공체계(Future Combat Air System, FCAS)’는 유인 전투기와 여러 대의 무인기를 통합해 운용하는 ‘시스템 오브 시스템즈’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 일정, 총비용, 산업 물량 배분을 두고 참여국 사이에 이견이 계속 나오면서, 당초 계획했던 2040년대 초반보다 전력화 시기가 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한국, KF‑21 확장 개념 구상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의 접근법은 기존 4.5세대급 KF‑21을 5세대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AI·무인 전투기·네트워크를 단계적으로 적용해 6세대 개념을 구현하는 ‘확장’에 가깝다.
방위사업청과 KAI에 따르면 KF‑21은 반능동형 스텔스 설계와 공대공 공격능력, 국산 AESA 레이더, 전자전 장비, 임무 컴퓨터 등을 통합한 블록1을 올해부터 우선 전력화한 후, 공대지 공격능력과 정찰 능력을 추가한 블록2, 스텔스 성능과 센서·무장 탑재능력을 확대한 상위 블록이 순차적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KF-21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확장 개념에 대해 KAI 관계자는 유럽의 라팔, 유로파이터와 KF-21은 같은 4.5세대 전투기이기는 하지만 출발점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즉, 이들 유럽 전투기는 3세대급으로 개발돼 4.5세대까지 확장한 것이라면, KF-21은 4.5세대로 개발돼 6세대급으로 확장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이들 유럽산 전투기는 기체 형상 등 사실상 확장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상태로,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재 6세대 전투기에 대한 정의가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것이 아닌 만큼 오히려 의미 있는 경쟁 상대는 유럽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관계자는 “6세대 전투기 기술로 꼽히는 유무인 복합체계의 효율성도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도 기술 실증 단계이지, 실전에서 검증된 건 아니다”라며 “현재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유럽에 비해 많이 뒤쳐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로드맵은 있는데, 정책은 없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국산 6세대 전투기 개발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KF-21을 기반으로 한 6세대 전투기 개발 구상이 KAI의 자체적인 로드맵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한 군사전문가는 “현재 6세대 공중전투체계 개발이 중·장기 계획에 공식적으로 반영돼 있지 않다”며 “업체 입장에서는 정부 차원의 사업 확정이 이뤄져야 개발 속도와 투자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기준점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역할 강화를 지적하는 주장도 나온다. 6세대 공중전투체계와 같은 고위험·고비용 사업일수록 민간 업체에만 부담을 지우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다. 특히 핵심기술의 성숙도가 아직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책연구기관이 선행기술 확보와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AI 기반 전투 운용, 유무인 복합운용, 전장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은 단기간에 사업화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런 영역은 국책연구기관이 비교적 긴 호흡으로 기술 위험을 먼저 줄여주고, 이후 민간 업체가 체계 통합과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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