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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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른이 되었나

뉴스컬처 2026-01-30 11:20: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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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교실은 언제나 사회의 축소판이다. 입시라는 이름의 경쟁, 성적이라는 숫자로 환원되는 가치,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자존감까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은 오늘의 교육과 청년 세대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문화적 사건에 가깝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교실 안 풍경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앨런 베넷의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분명하다. 입시 제도나 교육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교실 안 인물들의 말과 태도, 욕망과 불안을 통해 ‘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대사 뒤에는 교육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숨어 있다. 웃다가도 문득 씁쓸해지는 지점, 바로 그 간극이 이 작품의 힘이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포스터 이미지. 사진=MARK923,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포스터 이미지. 사진=MARK923,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

이야기의 중심에는 상반된 교육관을 지닌 두 교사가 있다. 지식 그 자체의 즐거움과 연구의 자유를 중시하는 헥터, 그리고 입시 전략과 결과를 중시하는 어윈. 이 대비는 이상적인 스승과 현실적인 스승의 구도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동시에 욕망하고 또 비판하는 교육의 두 얼굴을 상징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결국 더 좋은 대학과 더 안정적인 미래를 향해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만든다.

헥터의 수업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시험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시와 영화, 문학 속 대사를 통해 학생들의 감수성과 사고를 자극한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 속에서 학생들은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를 배운다.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배움의 시간, 쓸모없어 보이지만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기억들. 헥터라는 인물은 교육이 반드시 실용적일 필요는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반면 어윈은 냉정하다. 그는 입시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답을 설계하고, ‘남들과 다른 관점’을 전략적으로 만들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방식은 오늘날 각광받는 교육 흐름과도 닮아 있다. 차별화된 스펙, 남다른 서사, 계산된 개성. 어윈은 순수한 지식인이라기보다, 경쟁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화한 현대적 멘토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말은 불편하지만 현실적이다.

두 교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학생들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다. 여덟 명의 소년들은 각기 다른 계급적 배경, 성 정체성, 자존감의 높낮이를 지닌 채 교실 안에 서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누군가는 외모와 인기 속에서 안정감을 찾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말 못 할 감정과 열등감 속에서 조용히 흔들린다. 이들의 모습은 1980년대 영국을 넘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청소년들의 초상처럼 보인다.

특히 포스너와 같은 인물은 작품을 학원물의 틀을 넘어 청춘의 내면을 다루는 성장 서사로 확장시킨다. 성적과는 별개로, 그는 자기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그에게 배움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상처의 현장이기도 하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이렇게 ‘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늘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놓치지 않는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캐스팅 이미지. 사진= MARK923,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캐스팅 이미지. 사진= MARK923,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작품이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지식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가’이다. 책을 많이 읽고, 인용을 줄줄 외우며, 역사적 사실을 꿰고 있는 소년들이 과연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지식은 때때로 그들의 허영을 키우고,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베넷은 지식을 숭배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끝까지 묻는다.

이번 시즌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 크다. 여러 차례 국내 무대에 올랐음에도, '히스토리 보이즈'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얻는다. 과거에는 명문대 진학이 화두였다면, 지금은 ‘스펙’과 ‘자기 브랜딩’의 시대다. 하지만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청춘에게 결과를 요구하고, 과정의 방황에는 쉽게 불안해한다. 그런 사회에서 이 연극은 조용히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대 위 교실은 작고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시 한 구절, 영화의 한 장면, 역사 속 인물의 말이 소년들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며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다. 이는 인용의 유희를 넘어,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문화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예술과 인문학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결국 '히스토리 보이즈'는 입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학창 시절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잊고 살았는가. 시험 문제는 사라졌지만, 어떤 문장과 어떤 순간은 오래 남아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연극은 관객 각자의 교실을 소환한다. 당신을 지금의 당신으로 만든 수업은 무엇이었느냐고.

그래서 작품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길은 늘 복잡한 감정으로 채워진다. 웃고 떠들던 장면들이 뒤늦게 마음을 건드리고, 이미 지나온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문화는 이렇게 개인의 시간을 흔들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귀환은, 우리가 여전히 교육과 청춘, 그리고 배움의 의미를 놓고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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