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는 스포츠카의 가치를 숫자가 아닌 감각으로 증명해 온 브랜드다.
최고 출력이나 가속 성능보다 ‘어떻게 달리는가’에 방점을 찍었고, 그 기준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일관되게 미드십 레이아웃을 선택해 왔다. 엔진을 차체 중심, 운전자 뒤에 배치하는 구조는 로터스 스포츠카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이자 브랜드 정체성의 출발점이다.
로터스 미드십 철학의 시작은 1966년 등장한 ‘유로파(Europa)’다. 유로파는 경량화와 단순화를 중심에 둔 설계를 통해 레이싱에서 검증된 미드십 개념을 도로용 스포츠카로 확장했다. 출력 수치보다는 무게 배분과 균형을 중시한 접근은 이후 로터스가 걸어갈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선언이었다.
1976년 공개된 ‘에스프리(Esprit)’는 이 철학을 보다 대담한 형태로 발전시킨 모델이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웨지 스타일 차체와 낮은 전고, 넓은 차폭은 미드십 구조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에스프리는 터보차저 엔진 도입과 V8 트윈터보까지 이어지는 진화를 거치며 성능을 끌어올렸지만 차체 중심에서 비롯되는 균형과 조향 감각이라는 기본 원칙은 유지됐다.
1996년 등장한 ‘엘리스(Elise)’는 로터스 미드십 철학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구현한 모델로 평가된다. 알루미늄 본딩 섀시와 극단적인 경량화 설계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운전 감각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엘리스는 출력 경쟁에서 벗어나 스티어링 반응과 차체 중심의 일체감을 통해 로터스가 추구하는 스포츠카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냈다.
‘에보라(Evora)’는 로터스 미드십 역사에서 또 다른 전환점이다. 2+2 레이아웃과 V6 엔진, 개선된 승차감과 공간 활용성은 일상성과 확장성을 고려한 변화였다. 그럼에도 엔진을 차체 중심에 배치해 얻는 무게 배분과 핸들링 특성은 유지되며, 미드십 스포츠카의 실용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계보의 현재형이자 집약된 결과물이 ‘에미라(Emira)’다. 2021년 공개돼 2022년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한 에미라는 엘리스의 경량 감각, 에보라의 일상성, 에스프리가 구축한 브랜드 상징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했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편의 사양은 현대화됐지만 엔진을 운전자 뒤에 둔 미드십 레이아웃과 주행 중심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로터스의 미드십 스포츠카 역사는 단절 없이 이어져 왔다. 유로파에서 시작된 개념은 에스프리에서 확장됐고, 엘리스에서 정제됐으며 에보라를 거쳐 에미라에 이르러 하나의 완성된 흐름을 형성했다. 동력원과 기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로터스가 스포츠카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미드십은 로터스에게 선택이 아닌 정체성이며 그 시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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