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의약품 ‘성분명 처방’을 통해 수급 불안정 의약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수급 불안정 의약품(품절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명분으로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체조제 활성화’가 골자인 약사법 개정안이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가 시행될 경우 약물 안전성 저하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의원(국민의힘)은 오늘(29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수급 불안정 의약품, 성분명 처방이 해법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지아 의원은 “현재 215개 품목이 수급 불안정 상태에 놓이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의약품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필수재인 만큼 성분명 처방 정책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의료 정책은 일단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회복불가능성을 지닌다”며 “이번 토론회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짚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의약품 수급 불안정은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이라는 단일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원인 분석과 맞춤형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특히 성분명 처방의 주된 목적이 재정 절감이라면 이는 국민 건강권을 담보로 한 정책이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이대서울병원 순화기내과 교수)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근본 원인과 대책’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충기 정책이사는 의약품 수급 문제를 개별 품목 관리 차원이 아닌 치료 연속성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맥면역글로불린(IVIg) 부족 사태를 예로 들며 공급 차질이 환자의 치료 지연·중단으로 이어져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성분명 처방을 중심으로 제네릭 의약품이 확대될 경우 낮은 약가 구조와 취약한 공급망, 특정 국가 의존 문제가 맞물리며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영국, 루마니아의 경우 낮은 입찰가격과 부정확한 수요 예측으로 제조사들이 공급을 기피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임상적 치료 연속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데이터기반의 의약품 수급 가시성 플랫폼 구축 ▲공급망 전 주기 리스크 모니터링 전환 ▲중장기 수요 예측과 전략적 비축 ▲범부처 통합 거버넌스 등을 제시했다.
김충기 정책이사는 “환자는 약을 조금만 바꿔도 불안해하고 적응을 못하며 이는 결국 약물순응도 하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특정 성분의 유무만 따지는 공급 중심 논리는 의료현장의 치료 프로세스와 환자의 만족도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은 서울시의사회 임현선 부회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김충기 정책이사, 편한자리의원 노동훈 원장,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임세규 사무처장, 대한파킨슨병협회 한양태 대외협력이사, 보건복지부 강준혁 약무정책과장이 참여했다.
노동훈 원장은 방문진료 현장에서 체감한 성분명 처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환자가 부작용을 호소하더라도 어떤 제품을 복용했는지 의사가 즉각 파악하기 어렵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결국 의사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환자 측 우려도 제기됐다. 대한파킨슨병협회 한양태 대외협력이사는 “2024년 파킨슨병 치료제 공급 중단 이후 동일 성분의 제네릭의약품을 복용한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했다”며 “정부는 의약품 간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약 30%의 환자가 이상반응을 호소했고 이는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강준혁 약무정책과장은 “정부는 수급 불안정 문제의 해법으로 성분명 처방만을 유일한 정답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며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문제 유형에 맞는 맞춤형 대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