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파트 매수를 준비하던 직장인 A씨는 최근 뜻밖의 설명을 듣고 당황했다. 매매가가 17억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를 계약하려던 그는 고가주택 대출 규제로 인해 최대 4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중개업자는 “조건에 따라 6억원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규제를 피하는 편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 대목이지만, 실제로는 금융권 대출 심사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대출 가능 금액을 가르는 기준은 실거래가가 아니라 시세 통계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심사할 때 개별 거래 가격보다는 KB국민은행 시세나 한국부동산원 통계처럼 일정 주기로 산출되는 시세 지표를 우선적으로 활용한다.
A씨가 매수하려던 아파트는 최근 거래 가격이 17억원대에서 형성돼 있었지만, 시세 통계상 가격은 15억원 아래로 평가돼 있었다. 이 때문에 ‘15억원 초과 고가주택’에 적용되는 강화된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같은 집, 다른 결과… 대출 심사를 가른 핵심 기준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장 가격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시세 통계는 일정한 표본과 검증 절차를 거쳐 산출되다 보니 반영 속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거래가 뜸한 시기나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한 국면에서는 실거래가가 먼저 오르고, 시세는 한발 늦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 시차가 대출 가능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동일한 단지, 동일한 면적임에도 불과 몇 달 차이로 대출 한도가 달라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거래가는 이미 15억원을 넘었지만 시세 통계가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 한도가 적용된다.
반대로 거래 가격은 15억원 미만인데도 시세 통계가 먼저 올라 대출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매수 시점과 통계 갱신 시기가 맞물리며 결과가 엇갈리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기준이 규제의 허점이라기보다는 시장 안정성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개별 거래는 특수성이 크고 변동성이 높아 이를 그대로 대출 심사에 반영할 경우 기준이 수시로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다. 시세 통계를 활용하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따른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 역시 실거래가를 대출 기준으로 일괄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대출 한도를 맞추기 위해 거래 가격을 낮춰 신고하는 편법이 늘어나거나, 시장 질서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시세 통계의 시차가 결과적으로는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워주는 측면도 있다”며 “대출 가능 여부를 단순히 매매가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구조가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시세 통계가 실제 시장보다 먼저 상승하면 매수자는 예상치 못한 대출 제한에 부딪힐 수 있다. 이 때문에 계약 전 금융기관을 통해 적용 기준을 확인하고, 실거래 흐름과 시세 통계를 함께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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