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에서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 말을 좀 전달해 달라.”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좌담회 직후, 여당의 한 의원이 홈플러스 조주연 대표에게 건넨 이 말은 현재 홈플러스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위기의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움직이려면, 결국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먼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홈플러스는 현재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해 3월 회생절차에 돌입한 이후 네 차례나 회생안 제출을 미루며 M&A(인수합병)를 통한 활로를 모색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결국 지난 9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청산형 회생계획’ 작성을 허가받으며 기업 존속 자체가 불투명한 처지가 됐다.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국회 ‘MBK 홈플러스 사태 해결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유동수 의원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신청 이후 매달 약 500억원의 현금 유동성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연간으로 치면 적자 규모만 6000억원에 달한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돼 이번 달 현금흐름은 작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자금이 고갈되면서 직원들의 월급과 상여금 지급까지 유예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매출 역시 전년 대비 33% 급감했다.
문제는 홈플러스의 몰락이 개별 기업의 파산을 넘어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폐점 시 직고용 인원 2만여명을 포함해 입점 상인, 협력사 직원 및 가족 등 약 10만여명의 생존권이 직결돼 있다고 경고한다. 지자체장들이 연일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 역할론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조는 수개월 전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해 왔으며, 정치권의 관심도 낮지 않았다. 지난 16일 청와대 오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홈플러스 문제와 관련해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구제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꿈쩍 않는 ‘키맨’ 메리츠, 정부 지원 가로막는 명분 부족
기본적 경영을 위한 운전자금이 마르면서, 현재 홈플러스는 긴급 운영자금(DIP) 3000억원 대출을 희망하고 있다. MBK가 1000억원을 지급보증하고, 최대 담보권자인 메리츠금융과 산업은행이 각각 1000억원을 부담하는 안을 홈플러스는 구상 중이다.
하지만 메리츠의 반응은 냉담하다. 유동수 의원은 “메리츠 측은 매달 500억원 적자인 곳에 자금을 넣는 것은 한강에 돌 던지기와 다를 바 없다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 의원의 전언을 빌리면, 메리츠 측은 홈플러스의 한 달 고정비만 1000억원에 달하는데, DIP 지원을 덜컥 동의했다가 잘못되면 오히려 다른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다. 메리츠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먼저 나서는 것은 더더욱 명분이 부족하다. 산업은행은 심지어 홈플러스 회생의 채권단도 아니다.
유 의원은 “사실상 모든 키는 메리츠가 쥐고 있다. 하지만 정작 키맨인 메리츠는 오늘 이 자리(21일 국회 좌담회)에 오지 않았다”며 “자금 지원의 열쇠를 쥔 메리츠가 협상 테이블 자체를 외면하고 있어 문제를 풀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부모도 가만히 있는데 누가 돕나”... 모든 화살표는 MBK로
결국 메리츠와 정부의 문을 열 수 있는 회생의 진짜 열쇠는 MBK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주주가 먼저 ‘내 자식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메리츠와 정부를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투데이신문> 에 “지금 난제는 MBK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라며 “MBK가 구제 의지를 보여야 다른 이들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 한 관계자는 “부모도 가만히 있는데 누가 무슨 명분으로 돕겠느냐”고 꼬집었다. 투데이신문>
홈플러스 조주연 대표는 DIP 3000억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 3000억원을 합쳐 6000억원을 확보하면 1년 정도 정상 운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은 이미 붕괴되고 있다. 거래처의 상품 납품률은 45%로 반토막 났다. 진열대에 물건이 없으니 손님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자금 상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매장 98%가 임대 형태인 익스프레스를 기대 몸값인 3000억원에 팔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SSM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업계가 가맹점 위주로 점포 수를 확장하고 있는 터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는 현재 업계의 전략과는 상이한 면이 있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정부가 MBK의 선제적 조치만 기다리며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대주주의 책임 이행이 전제되지 않은 지원은 특혜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모든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대주주인 MBK다. 이해타산을 따지며 침묵하는 사이 홈플러스에 남은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10만명의 생계가 달린 이번 사태의 핵심인 MBK가 구제에 더욱 적극 나설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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