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선 첫해 연말, 두 건의 간접고용 노동자 대량해고가 터졌다. 민간부문에서는 한국지엠 하청 노동자 120여 명이 지난해 12월 31일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를 만든지 5개월여 만에 원청이 하청업체를 바꾸며 20년 넘게 이어져온 고용승계 관행을 깬 것이었다. 해고자들은 일터였던 한국지엠세종중앙물류센터 안에서 농성하며 복직을 촉구 중이다.
공공부문에서는 개방 시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하청 노동자 3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결정 이후 6개월여의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고용보장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에 해고자들은 오체투지, 관저 앞 1박 2일 농성 등을 이어가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
두 사업장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위태로운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을 살폈다. 첫편은 지난 14일 지엠물류센터에서 만난 김용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부품물류지회장과의 인터뷰다. 편집자
한국지엠세종중앙물류센터에 들어서면,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선반이 보인다. 그 안에 보관된 것이 한국지엠 자동차의 부품일 것이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명칭 그대로 여기는 대리점과 고객이 필요로 하는 지엠의 자동차 부품을 들여온 뒤 배송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저기 붙어 있는 포스터 보세요. GM이라고 적혀있죠? 이 안에서 쓰는 물품 하나하나에 전부 GM 마크가 찍혀 있어요." 지난 14일 지엠부품물류센터 안에서 만난 김용태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품물류지회장이 말했다. 노조를 만든 지 5개월 여만에 12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일자리를 잃은 그는 2주째 센터 안에서 복직을 촉구하며 농성 중이었다.
김 지회장의 말을 듣고서야 이곳이 명칭대로 지엠의 공간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표식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선반은 물론 부품을 담은 바구니, 지게차에 끼우는 목제 받침, 산업안전 관련 안내나 업무 흐름을 담은 포스터 한 장, 한장에도 "GM"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센터 안에 지엠 사무직들이 일하는 사무실도 있었어요. 안전 순찰이란 명목으로 그 분들이 매일 아침 공정을 체크해요. 전화나 메일로 업무 지시도 했죠. 전에는 생산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공정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한 공정에 정규직을 몰아 넣었지만요."
원청이 소유한 설비를 쓰고, 원청의 지휘·감독이 이뤄지고, 원청 직원과 섞여 일하는 건 불법파견의 징표다. 원청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한 3년 간 김 지회장은 하청업체인 우진물류 소속이었다.
간접고용을 통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 회피는 해묵은 문제다. 특히 불안한 것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고용이다. 다행히 지엠물류센터 하청 노동자의 고용은 20년 넘게 유지됐다. 그러나 이는 '기본급 158만 원'으로 상징되는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대우를 감내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안정'을 찾아 입사한 지엠물류센터에서 마주한 현실
8살 딸의 아버지이자 1992년생인 김 지회장은 이곳을 "평생 직장"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3년 전 지엠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이직이 어려워지는 현실이 그런 갈망과 결심을 갖게 했다. 지난해 2월에는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도 했다.
언젠가 집회를 위해 모인 이들에게 쓴 편지에서 배우자는 김 지회장을 "25살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온 사람",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김 지회장에게도 지엠물류센터는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다. 가장 문제가 된 건 낮은 임금이었다. 기본급은 158만 원에 근속수당이나 상여금은 따로 없었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생산수당과 능률수당은 합쳐도 60만 원 정도였다. 그밖에 몇 만 원 수준의 직책수당이 있었다.
잔업을 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의 임금이었다. 그런 속에서 잔업은 원청이 그날 그날 배정한 물량에 따라 강제로 배정됐다. 바쁜 철이면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도 많았다. 딸이 아픈데도 집에 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기도 했었다.
연차휴가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휴가를 쓰려면 관리자의 눈치를 봐야 했고, 사유는 전체 직원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 공지됐다. 개인회생 같은 민감한 사안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사측이 모든 직원에게 한 달에 하나씩 월차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한 일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소박한 바람 품고 만든 노조
이런 일터에서 노조를 만들려 마음 먹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김 지회장이 알기로도 몇 번의 노조 결성 시도가 있었다. 센터에서 만난 다른 23년차 노동자도 "전에도 노조 결성 시도가 있었지만, 사측에 말이 흘러 들어가며 실패했다"고 회상했다.
김 지회장도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 중 하나였다. 팔자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평생 직장"으로 택한 곳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배우자의 말처럼 "책임을 피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작용했던 걸까. 김 지회장은 직접 총대를 멨고, 지난해 7월 노조를 띄웠다.
반응은 대단했다. 반장, 계장 등 중간관리자까지 거의 모든 하청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 그 힘으로 변화도 만들었다. 잔업을 시킬 때 동의를 받게 했고, 근속에 기반한 최소 15일 이상 연차 부여와 자유로운 사용을 이뤄냈다. 겨우 근로기준법이 작동하기 시작한 정도의 변화지만 김 지회장도 조합원들도 기뻐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 시말서를 쓰게 하던 관행을 바꿨고, 노동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관리자의 눈치를 보는 일도 줄었다. 설령 문제가 생겨도 노조에 기댈 수 있게 됐다. 폭염 대책의 일환으로 센터 천장에 대형 선풍기를 달게 하기도 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우진물류에 임금단체교섭도 요구했다. 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근속수당 신설을 담았다. 연차 사용과 잔업 거부에 대한 권리도 법에 준하는 내용을 담아 더 탄탄하게 보장받으려 했다.
노조 만든지 5개월여만에…20년 고용승계 관행이 깨졌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엠은 통상 여름휴가가 끝나면 우진물류와 도급계약을 갱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을이 되도록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 이를 이유로 사측이 안을 내지 않아 교섭마저 결렬됐다. 지난해 10월 23일 진행된 쟁의행위 투표의 결과는 가결이었다.
소문으로만 돌던 '업체 변경을 통한 해고'가 실제 이뤄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현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김 지회장은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10월 22일 불법파견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설령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법정에서 지엠의 고용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원청인 지엠이 직접 움직였다. '진짜 사장 나오라고 해서 나왔다'며 노사협력팀 상무가 지난해 10월 30일 지회를 찾았다. 그가 꺼낸 카드는 '발탁채용'이었다. 지엠물류센터 하청노동자를 부평공장에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조합원 대부분이 세종에 뿌리내린 상황이었다. 익숙한 물류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근속연수가 20년을 넘는 조합원이 있는데, 신규채용을 제안한 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실제로는 선별 고용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지회가 의견을 전하고 재협의를 요청하자, 지엠은 제안을 거뒀다.
도급계약 갱신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우진물류는 지난해 11월 27일 폐업을 공고하고 해고 예고를 했다. 폐업 사유는 "도급계약 종료"였다. 애초 우진물류에 독자적 사업능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한 이유였다.
새 업체로는 정수유통이 들어왔다. 부품 포장 도급계약 등으로 전부터 지엠과 관계를 맺어온 이 업체는 기존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지엠은 도급계약에 고용승계 조항이 없다며 뒤로 빠졌다.
"물량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한 겨울 해고자들의 농성이 던지는 질문
김 지회장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20년 동안 고용승계가 됐어요. 업체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량은 그대로에요. 정수유통이 채용을 진행 중인데, 아직도 일할 사람을 다 못 구했대요. 이런 상황에서 왜 고용승계가 안 되는 거죠?"
오랜 시간 많은 하청 노동자가 같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2004년 기아차는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자 하청업체를 바꿔 그들을 해고했다. 2015년 아사히글라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두 현장에서 해고자들이 복직하기까지 각각 4개월여의 싸움, 9년여의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
하청업체 변경 및 고용승계 거부에 대한 원청의 주장도 늘 비슷했다. '노조 설립과는 무관한 일이며,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 뻔한 술수가 20년 넘게 반복되는데도 한국사회는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제동장치를 만들지 못했다.
이를 그대로 두면, 노란봉투법 이후로도 하청 노동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김 지회장은 말했다.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해도 기존 업체를 폐업하고 새 업체를 들인 뒤 고용승계를 거부하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면 하청 노동자들은 노조를 어떻게 만들죠?"
간접고용 구조가 낳은 묵직한 질문과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품고 김 지회장과 같은 처지에 놓인 90여 명의 해고자는 지엠물류센터 안에서 보름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진짜 사장'이라 칭하며 나타났던 지엠 사측의 책임있는 태도와 노동을 존중하겠다던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기다리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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