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삶이란 건 사실 하루하루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일상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작지만 중요한 의미들, 어쩌면 이미 주변에 혼재돼 있을 의미들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삶이란 건 대단할 필요도 없고, 어쩌면 계획 같은 것도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상대에겐 참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새해 목표는 뭐예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생각보다 끈기 있는 타입이군요? 농담이고, 고마웠다. 나 같으면 그런 질문이 목구멍에서 쏙 들어가 절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단순히 고맙다는 이유로 뭔가 지어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죠, 저에게는 그딴 거 없어요”라고 무언가를 급히 묻어버리듯 대답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몸 안 어딘가에서 작고 따뜻한 무언가가 배앓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을 쏙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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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전혀 내가 아닌 것 같은 말을,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정말 나이기도 해서 ‘혹시 이걸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나?’ 하고 생각될 만큼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내 몸속의 작고 따뜻한 매혹이 알아서 대답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저 새해에는 그냥 좀 잘 있고 싶어요. 너무, 너무 그렇게 가 버리지 않고 그냥 잘….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그게 힘듦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냥 즐겁고 다행스럽게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잠깐 몸을 추스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것을 바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진심처럼. 그날 그 사람과는 커피를 많이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즐거웠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즐거움으로? 무슨 기쁨으로? 나는 거의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알 도리가 없어서 더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를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진 않는다. 그런 종류의 질문은 대화를 종종 미궁으로 빠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떤 울음으로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슬프게 하려고 만난 게 아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곤 한다. ‘사람들이 뭣 땜에 사는 것 같애?’
이유라는 것은 또 얼마나 치밀하고 간사한가. 애초에 틀린 질문을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고립시키면서 자꾸 창밖으로 세상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나가지 않고 직접 겪어보지 않고 듣거나 관찰하지 않으면서 내게 주어진 걸 풍경처럼 흘겨 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필요 이상으로 반복되고 굳어졌다. 새로운 자극에도 놀라거나 감동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 필요한 것만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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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요한 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모든 것은 한낱 계산, 불필요한 과음 같은 최면일 뿐. 나는 오로지 나랑만 있을 수 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적군이 되려는 것 같았다. 숨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멀어져야 해, 거리가 필요해…. 홍보가 필요하거나 부득이 알려야 할 일이 없는 잠깐을 틈 타 SNS를 비활성화했다. 세상은 가만히 있고 나만 멀어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망가 버리면 결국 만나게 되는 건 아직 화해하지 못한 나 자신뿐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안부, 같이 밥을 먹어주고, 일도 함께하고 혹은 그저 놀기만 하면서, 쓸쓸하고 외롭게 지나온 것 같지만 사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었다. 어딘가에 반드시 들어주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잊을 수 없다. 느린 것이 결함이 될 수 없다. 새로운 걸 내놓지 않는다 해서 내가 낡아지는 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사실을 끝에 가서 깨닫는다. 나는 마지막에 열린다.
어떤 낱말이든 ‘새’와 함께 있으면 뭐든지 가뿐하고 새로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젖은 날개를 훌훌 털고 가볍고 낮게 날아갈 것 같다. 후련함이 느껴질 만큼 기어이 날아갈 것 같다. 새롭다는 건 어쩌면 그런 뜻일지도 모른다.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빚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약간의 굳은 먼지를 털고 몸체를 가볍게 정돈하는 것. 그런 뒤에 또 약간의 도약이나 그 정도의 산뜻함. 아무렇게나 ‘새’라고 말해본다. 새 해에는 새 거리로, 모든 낱말들이 양쪽의 하나 이상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새 해도 새 거리도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새롭게 ‘새’답게 자연히 능숙하고 마음 편하게, 그렇게 매일 같은 새 계절과 새 날을 맞이하고 싶다.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박참새
」시인.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 〈시인들〉을 펴냈다.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 〈정신머리〉를 출간했다. 글자에 가둬지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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