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귀로 듣는 삶의 이야기, 소리로 전하는 시대의 숨결.’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렉처 콘서트 ‘소리정담 – 김영자, 김일구 편’이 2026년 2월 4일과 5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판소리와 창극의 역사적·문화적 의미, 명창들의 삶과 예술 철학을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다.
‘소리정담’은 명창들의 예술 세계와 인생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는 렉처 콘서트다. 관객은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명창들이 전하는 삶의 경험, 그리고 판소리와 창극의 전통적 맥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출연진은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영자 명창과 ‘적벽가’ 보유자 김일구 명창이다. 두 명창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판소리 전통을 이어온 거장으로, 작품 해석과 소리의 깊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김영자 명창은 다섯 바탕 판소리를 모두 완창한 소리꾼이다.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등 작품에서 뛰어난 소리와 섬세한 감정 표현을 보여왔다. 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고, 국립창극단 주요 창극 주역을 역임했다. 김영자 명창의 소리는 음색의 변화가 섬세하고, 장단과 호흡의 변화가 인물 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심봉사 눈 뜨는 대목’에서는 긴장감과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호흡과 음정으로 구현하며, 관객이 사건과 인물의 내면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김일구 명창은 판소리뿐 아니라 아쟁과 가야금 산조에도 능하며 국악계에서 팔방미인으로 불린다. 그는 장월중선에게 아쟁 산조, 원옥화에게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다. 판소리 ‘적벽가’ 완창 이후 국내외 무대에서 서사적 긴장감과 웅장함을 전달하며, 역사적 사건과 인간 심리를 동시에 체감하게 한다. 김일구 명창의 소리는 웅장하고 호방하며, 아쟁과 가야금 산조를 통한 악기 연주는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적벽대전’에서는 전투 장면의 긴박함을 음향으로 표현하고, 장단과 호흡을 극적 긴장과 일치시켜 판소리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역사적 서사와 맞닿도록 만든다.
두 명창은 1987년 마당극 ‘뺑파전’을 통해 창극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뺑파전’은 판소리 ‘심청가’ 주요 등장인물을 해학적으로 각색하여 사회적 풍자와 서민적 웃음을 담았다. 김일구 명창이 ‘심봉사’, 김영자 명창이 ‘뺑덕어멈’ 역을 맡아 연기, 춤, 소리를 결합한 공연으로 창극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알린 기념비적 작품이다.
공연에서는 명창들의 대표 작품 ‘심청가’와 ‘적벽가’를 비롯해 ‘춘향가’, ‘수궁가’ 일부 대목, 민요, 산조, 토막 창극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각 작품은 서사적 구조와 인간적 감정,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어, 관객은 전통 예술의 다층적 의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심청가’는 효와 희생, 구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조선 후기 서민 사회의 인간상을 반영한다. 심청의 효심과 헌신, 그리고 심봉사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과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김영자 명창은 ‘심봉사 눈 뜨는 대목’과 ‘뺑덕 만나는 대목’에서 인물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하며, 청중이 이야기 속 감정을 공감하도록 이끈다. 판소리 장단과 발음, 미묘한 선율 변화가 인물의 내적 서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의 연주는 작품 해석의 정수를 보여준다.
‘적벽가’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판소리로, 전투와 전략, 인간 의지와 운명을 그린 서사극이다. 원래 명나라 장군과 전투를 다룬 중국 소설에서 유래했지만, 조선 후기 판소리로 전승되면서 우리식 서사와 음악적 장치로 재해석됐다. 김일구 명창은 ‘적벽대전’과 아쟁 산조를 통해 웅장한 음향과 극적 긴장감을 구현하며, 관객이 시대적 사건과 인간 내면을 동시에 체감하도록 돕는다. 그의 연주는 역사적 사실과 인간 심리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판소리의 매력을 보여준다.
‘춘향가’는 신분과 사랑, 의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중심으로 신분제 사회의 모순과 인간관계의 섬세함을 그린다. 김영자 명창은 ‘신연맞이’ 장면에서 춘향의 순수한 감정과 시대적 제약을 동시에 표현하며, 청중에게 극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수궁가’는 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판소리로, 사회적 은유와 상징이 풍부하다. 김영자 명창이 ‘약성가’ 대목에서 보여주는 음성 곡선과 호흡은 작품 속 상징적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인간 욕망과 자연 질서, 도덕적 선택이 주제로, 판소리의 교훈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첫날 공연에서는 김영자 명창이 단가 ‘관동팔경’, ‘춘향가’ 중 ‘신연맞이’, ‘수궁가’ 중 ‘약성가’, 민요 ‘화초 사거리’를 선보인다. 김일구 명창은 ‘심청가’ 중 ‘모녀 상봉’과 가야금 산조, 토막 창극 ‘어사 장모 상봉’ 장면을 무대에 올려 서사와 음악적 긴장감을 결합한 무대를 완성한다.
둘째 날에는 김일구 명창이 단가 ‘강상풍월’, ‘적벽대전’, 아쟁 산조를 통해 웅장하고 호방한 소리 세계를 펼치고, 김영자 명창은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뺑덕 만나는 대목’, 남도 민요 ‘육자배기’, 토막 창극 ‘어사와 나무꾼’ 장면을 선보인다. 두 명창의 대비와 조화는 판소리의 다층적 매력을 생생히 드러낸다.
공연의 고수로는 국가무형유산 진도씻김굿 이수자 김태영이 참여한다. 그의 장단과 북소리는 명창들의 소리를 받치며, 전통 판소리의 리듬과 호흡을 청중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고수와 소리꾼의 호흡과 상호작용은 판소리 공연의 핵심적 매력이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이 연출과 해설, 사회를 맡아 명창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판소리와 창극이 담고 있는 문화적·역사적 의미를 관객에게 안내한다. 해설과 사회를 통해 청중은 작품의 배경과 장르적 특징, 명창들의 예술적 선택까지 이해할 수 있다.
김영자 명창은 온고을 소리청 이사장,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역임, 다수 국악대상과 대통령상 수상 경력을 가진 거장이다. 김일구 명창 역시 온고을 소리청 대표로, 판소리와 기악, 창극 분야에서 다수 수상하며 국내외 무대에서 전통예술의 가치를 알렸다.
‘소리정담’은 공연과 교육, 역사적 해설이 결합된 무대로, 관객은 명창들의 소리와 삶, 판소리와 창극의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전통 예술과 인간적 서사를 현대적 감각으로 이해하며, 명창들이 걸어온 예술의 길과 전통의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다.
판소리와 창극의 세계, 명창들의 삶과 예술 철학, 그리고 전통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읽어가는 ‘소리정담’은 전통예술 팬은 물론 일반 관객에게도 한국 문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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