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니콜로 파가니니라는 이름 앞에는 언제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연주자’, 혹은 ‘음악사상 가장 위험한 천재’. 이 모든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연주라는 행위 자체를 바꿔버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파가니니의 곡은 연주자에게 부담으로 언급되고, 청중에게는 경외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파가니니의 음악이 유독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 안에는 음악적 실험과 시대적 욕망이 함께 녹아 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음악은 여전히 작곡가 중심의 예술이었다. 무대 위의 연주자는 작품을 전달하는 매개에 가까웠다. 그러나 파가니니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관객은 더 이상 곡이 아니라, 사람을 보러 공연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연주를 분석하려는 순간 이미 다음 세계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평론가들은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이해 불가능해진다”는 모순적인 찬사를 남겼다. 이는 파가니니가 이론보다 감각이 앞선 연주자였음을 보여준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은 하나의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신경, 숨결, 광기, 그리고 욕망을 동시에 담아내는 도구였다. 그는 하모닉스, 단현 연주, 왼손 피치카토, 초고속 스타카토 등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기법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중요한 것은 그 기교가 과시가 아니라 표현의 언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주는 필연적으로 소문을 낳았다. 공연 중 그의 발치에 사슬이 감겨 있었고, 악마가 나타나 연주를 도왔다는 이야기는 당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이었다. 인간이 저런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믿음이 오히려 파가니니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그러나 무대 아래의 파가니니는 결코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도박에 빠졌고, 방탕했으며, 사업에 실패했고, 평생 질병에 시달렸다. 천재성과 자기파괴가 동시에 폭주하는 삶이었다. 이 모순된 모습은 오히려 그의 음악에 인간적인 균열을 남겼다.
파가니니는 작곡가이기 이전에 자신의 신체를 가장 잘 아는 연주자였다. 그는 자신의 손 크기와 손가락 유연성, 활을 다루는 방식까지 세밀하게 인식하며 곡을 만들었다. 이러한 접근은 평균적인 연주자를 기준으로 한 음악과는 달랐다. 그의 작품이 연주하기 까다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출발점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파가니니의 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이올린의 물리적 한계를 밀어붙이는 구성이다. 넓은 음정 이동과 빠른 포지션 변화, 한 손으로 여러 성부를 동시에 처리하는 기법은 연주자의 집중력과 체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는 악기를 연주한다기보다 신체 전체를 활용해 음악을 구현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에만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은 매우 극적인 성격을 지닌다. 빠른 선율이 이어지다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오고, 화려함 뒤에 음산한 분위기가 드러난다. 이러한 변화는 연주자에게 감정의 흐름과 이야기 구조를 동시에 설계할 것을 요구한다.
리듬과 박자 역시 고정된 틀에 머물지 않는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정확함보다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중시한다. 악보를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음악의 호흡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비로소 설득력이 생긴다.
이러한 특징은 파가니니가 활동하던 낭만주의 시대의 문화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19세기 초 유럽은 개인의 감정과 비범한 재능, 예술가의 고독에 강한 관심을 보이던 시기였다. 파가니니는 시대가 기대하던 ‘특별한 예술가’의 모습을 음악으로 구현했다.
파가니니의 연주는 당대 사람들에게 거의 전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연주 도중 현이 끊어져도 멈추지 않는 모습, 무대 위에서 몰입한 채 연주를 이어가는 태도는 신비로운 인상을 남겼다. 이로 인해 파가니니는 인간을 넘어선 존재처럼 회자되었고, 그의 음악 역시 특별한 영역에 놓이게 됐다.
이 이미지와 기대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할 때, 연주자는 음을 정확히 연주하는 것 이상의 부담을 느낀다. 음악 속에 담긴 위험함과 긴장감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드러내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파가니니는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리스트와 브람스는 그의 주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파가니니를 기교와 도전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지금도 연주된다. 그의 곡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의 나열이 아니라, 한 시대가 품었던 예술적 욕망과 한 인간의 집요한 탐구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여전히 연주자에게 조용히 한계를 마주하게 만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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