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새해의 출발선에 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을 묻는다.
우리는 속도와 요약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손가락 끝으로 넘겨지는 수많은 해답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빠른 즉답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천천히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마리끌레르 피처팀은 새해를 열며 정보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장치로서 ‘질문’에 주목했다. 인공지능(AI), 환경, 계층, 돌봄, 기술, 도시, 주거, 노동. 오늘의 삶을 규정하는 뜨거운 화두들을 하나의 리스트로 정리하고, 각 영역에 정통한 필자에게 단 하나의 질문만을 던졌다. 기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가. 돌봄은 왜 여전히 사적인 희생으로 남아 있는가. 안정적 주거는 언제부터 권리가 아닌 운이 되었는가. 노동은 왜 존엄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특정 분야에 한정한 파편화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힌 동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답을 엮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사유해온 필자 8인의 답변을 통해 우리의 사고가 확장되고, 보다 깊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좌표로서 말이다.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알고리즘에
죄를 묻는 것이
타당한가?
김재인
철학자,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취향 지능의 시대가 왔다.
나를 압박하는 추천과 광고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지만,
나의 취향과 안목은 나를 자유롭게 해줄 원천이다.
나는 취향을 길들이고, 내 취향은 나를 만든다.
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고, 습관은 내 삶을 선택한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알고리즘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실망하곤 한다. 그래서 종종 ‘알고리즘 추천’이 원망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도 종종 그렇게 진단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알고리즘은 죄가 없다.
콘텐츠 소비의 중심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유튜브·인스타그램·페이스북·틱톡 등)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거 매스미디어(TV·라디오·신문·잡지·영화 등)와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는 방식이 ‘일대다’가 아닌 ‘다대다’이다. 플랫폼에서는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가 교류한다. 생산자는 더 많이 팔려 하고, 소비자는 더 마음에 드는 것을 보려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욕망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추천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 투명성과 공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기업의 핵심 노하우이며, 만일 이것이 공개되면 자신의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하려는 생산자의 오남용은 불가피하다. 개인정보 보호, 공정성 강화, 아동 청소년 보호, 유해성 제거 같은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추천 알고리즘이 문제라는 지적은 사태를 지나치게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적절한 추천을 언제나 환영한다. 미술관, 박물관, 음악회는 모두 추천, 즉 큐레이션에 의해 작동한다.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원치 않는다. 대부분 스스로 애써 평가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 우리는 전문가의 안목으로 잘 고른 콘텐츠를 원한다. 취향의 강요는 폭력이지만, 우리는 취향의 유도를 자발적으로 원한다. 삶과 시간의 가성비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말란 법도 없고, 때로는 그게 더 잘 맞아떨어진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소수 및 개인의 취향까지도 분석해 추천하는 덕에 놀라운 호응을 얻었는데, 이는 아마존이 도서 추천을 통해 초기에 성과를 올린 것과 같은 이치다. 소수의 취향을 가려내고 알려주기 위해 애쓰는 인간 큐레이터는 존재하기 어렵다.
남는 문제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느냐 여부다. 취향은 훈련을 통해 개인이 지니게 된 능력이며, 무한 정보 시대의 새로운 지능이다. 취향 지능이 있다면 나의 안목으로 알고리즘의 추천을 걸러낼 수 있다. 알고리즘은 근본적으로 나보다 기업을 위한다. 내가 나를 위하는 길은 나만의 취향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취향의 훈련은 주로 인문학과 예술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실 그것들은 인류가 발견하고 발명한 뾰족한 취향의 흔적이다.
취향 지능의 시대가 왔다. 나를 압박하는 추천과 광고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지만, 나의 취향과 안목은 나를 자유롭게 해줄 원천이다. 나는 취향을 길들이고, 내 취향은 나를 만든다. 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고, 습관은 내 삶을 선택한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