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난 연애들을 한 장소에 모아둔다고 상상해 보자.
얼굴도,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다. 누군가는 말이 없었고, 누군가는 시끄러웠으며, 누군가는 당신을 숭배했고, 누군가는 당신을 경멸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무작위의 집합체.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면 소름 끼치는 규칙성이 발견된다.
그들은 모두 당신을 ‘똑같은 이유’로 울렸다. 혹은 당신이 그들을 ‘똑같은 이유’로 떠났다.
첫 번째 남자는 바람을 피웠고, 두 번째 남자는 술을 좋아했으며, 세 번째 남자는 게임에 미쳐 있었다. 소재만 다를 뿐, 그들은 모두 당신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당신은 매번 “이번엔 다르다”라고 확신하며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말은 언제나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것처럼 똑같았다.
우리는 이것을 팔자라고 부르거나, 남자(혹은 여자) 보는 눈이 없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이것은 운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무의식 속에 이미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어떤 ‘지도’ 때문이다. 당신은 눈을 가린 채로도 기가 막히게 그 지도에 표시된 늪과 절벽만을 찾아다녔다.
이 글은 그 지도를 펼쳐보는 시간이다. 당신이 왜 하필 그런 사람을 사랑했는지, 왜 그토록 아픈 방식으로 헤어져야 했는지, 그 필연적인 경로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낡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익숙한 지옥’
우리는 사랑을 찾아 헤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뇌는 사랑보다 ‘익숙함’을 찾는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낯선 천국보다는 익숙한 지옥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고통은 대비할 수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행복은 불안을 야기한다.
당신의 연애 지도는 대개 유년기에 완성된다. 부모, 혹은 주 양육자와 맺었던 그 최초의 관계가 당신의 사랑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내렸다.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정서적으로 부재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의 뇌는 ‘사랑=기다림’이라고 학습한다.
성인이 된 당신 앞에 다정하고 연락 잘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당신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심장은 뛰지 않는다. 지루하다고 느낀다. 뇌의 지도에 그 사람은 ‘사랑’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어딘가 그늘이 있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당신을 애타게 만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뇌의 편도체가 맹렬하게 반응한다. “찾았다!” 당신은 이것을 운명적인 떨림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여기 내가 아는 그 익숙한 결핍이 있어”라는 경고음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 강박’이라 불렀다. 우리는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현재의 연인에게서 해결하려 든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선택해, 기어이 그를 다정한 남자로 바꿔놓음으로써 어린 시절의 패배를 승리로 바꾸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오만이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당신의 과거를 치유하려 들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당신의 치료사가 아니다.
그는 그저 당신 아버지의 대역 배우로 캐스팅되었을 뿐이고, 대본에 충실하게 당신을 외롭게 만들다가 퇴장할 뿐이다. 당신이 낡은 나침반을 버리지 않는 한, 당신은 계속해서 같은 늪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림자 투사, 내 안의 괴물을 사랑하다
연애 지도를 그릴 때 반드시 표시해야 할 또 하나의 지형은 그림자다.
융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억압된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내가 억누른 나의 모습을 마음껏 발산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매혹된다.
예를 들어,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충동성, 무책임함, 자유분방함을 철저히 억압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실한 남자가 아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약속을 어기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나쁜 남자’다. 그녀는 그를 보며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살지 못한 삶을 그가 대신 살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필연적으로 증오로 바뀐다. 처음에는 그의 자유로움이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로 그 무책임함 때문에 그를 경멸하게 된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녀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그 남자가 아니다. 자기 내면에 억누러 둔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면이 혼란스럽고 의존적인 남자는, 차갑고 통제적인 여자에게 끌린다. 그녀의 냉정함이 자신의 혼란을 잡아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녀의 그 냉정함 때문에 숨 막혀 하며 도망친다.
당신이 만났던 연인들의 공통점을 적어보라. 그들은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사실은 당신 안에 숨겨두었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연애 지도는 타인을 찾아가는 약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지도를 찢고 길을 잃을 용기
이제 종이와 펜을 꺼낼 시간이다. 지난 연인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의 특징을 적고, 우리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를 적어보라. 화살표를 이어보면 섬뜩한 패턴이 드러날 것이다. 그 패턴이 바로 당신의 연애 지도다.
이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다시는 이 지도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당신이 겪은 불행은 우연이 아니었다. 당신은 무의식의 자동항법 장치에 몸을 맡긴 채, 익숙한 고통의 경로를 비행해 왔을 뿐이다. 이제는 수동 조작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뇌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그 지점에, 오히려 건강한 관계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그 사람에게서, 오히려 가장 위험한 징후를 읽어내야 한다.
익숙한 길은 편하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같은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낯선 길로 들어설 용기가 필요하다.
그 길은 울퉁불퉁하고, 설렘도 덜하며, 때로는 밋밋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길은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지도를 확인했다면, 이제 그 지도를 찢어라.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당신의 부모도 가보지 못했고 당신의 전 연인들도 데려가 주지 않았던, 그 낯설고 고요한 평지로 걸어 나가라. 진짜 당신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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