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시]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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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시]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연우

뉴스로드 2026-01-16 09:39:19 신고

조카만의 규칙

보이지 않는 선을 그려놓고 나는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은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오른손은 송곳니 없는 개의 입 왼손에는 칼을 쥔다 아직 울지 마요 이모가 바라는 걸 구해올게요 말한다

무엇을 구해올 거니?

할머니를 구해올 거예요

어디에서?

할머니 안에서요

 

나는 등뼈 하나를 놓친다

데구르르 굴러가다 고모가 밟고 넘어진다

고모는 우울증 환자라 실비도 없는데 큰일 났대요

 

울지 않는 아이들은 씩씩하게

옷장 속에서 튀어나오고 쌓아둔 방석 위로 뛰어내린다 정말 용감하구나

 

그 안에 뭐가 있었니?

 

방금 전까지

할머니가

 

더 낮게

허리를 접는다

무너지지 않게 손끝으로

아이의 말 밑을 받친다

 

조카는 벽을 두드린다

벽이 아니라 뻥 뚫린 초원을

할머니를 내놔!

두 주먹이 하얗다

그러면 뱀처럼 얇고 길어진 할머니가 쑥 하고 튀어나올 것처럼

 

아이는 뛰어다니며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 대해 간섭한다

 

조카가 손가락질하면 다들 입을 뗀다

 

밥맛이 좋군요

비가 오지 않네요

그제야 주변이 생겨난 것처럼

 

조카는 옆 호실에 뛰어들어갔다가 하얀 그릇을 손에 쥐고 나온다 그건 돌려줘야 한단다 하지만 어른들이 내게 쥐여 줬어요 밥을 꼭꼭 씹어먹으라고 했어요

 

아이는 수저로 식탁을 두드리다

가장 아낀다는 분홍 스티커를 할머니 사진에 붙인다

내가 정말 아끼던 사람이었어요…

 

아이니까요

아이니까

그래서 더 무섭다

 

조카가 내 등을 두드린다 무언가가

뼛속에서 나오려는 것처럼

나는 무릎을 모으고

작아진다

 

그제야 조카가

기쁜 얼굴로 나를 안아 준다

 

- 202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해설]

2026년 신춘문예 당선작 중 한 편인 이 시는 시인이 숨겨놓은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시적 화자인 이모의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모는 무언가 위축된 느낌이 든다. 시적 공간은 할머니의 장례식장이다. 정황상 어린 조카는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머니라 했지만, 조카의 외할머니면서 이모의 엄마다. 친정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모에게 송곳니가 나지 않은, 한 다섯 살쯤 된 조카가 “아직 울지” 말라며, “이모가 바라는 걸 구해올” 거라 오히려 다독인다. 하지만 “왼손에는 칼을” 들고 언제든 벨 준비가 되어 있다. 당연히 조카는 할머니를 구해올 수 없다. 인간은 이승과 저승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구해올 수 있다고 하는 첫 번째는 죽음에 대해 잘 분별할 수 없는 나이이고, 두 번째는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구해오는 곳이 저승이 아니라 “할머니 안”이다. 육체적인 할머니가 아니라 영혼적인 할머니라는 말이다. 현생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깃든 곳은 이모다. 다시 말해 이모에게 할머니의 역할을 대신해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말에 이모인 “나는 등뼈 하나를 놓친다”. 그 등뼈를 “우울증 환자”인 고모가 밟고 넘어진다. 왜 하필 넘어지는 것이 고모일까. 혈연 관계상 고모는 아버지, 즉 부계 혈통이다. 이 시에서 할머니·이모·고모·조카는 등장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우울증 환자인 고모를 통해 아버지의 부재 이유를 짐작할 뿐이다. 그러면 아이의 어머니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이것이 이 시를 해석하는 주요 키워드지만, 시인은 단서를 제공할 뿐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철저히, 의뭉스럽게 문장 뒤로 숨긴다. 이 시를 수작으로 끌어올린 요인이기도 하다. 아이는 천진난만하다. 용감하게 “옷장 속에서 튀어나오고 쌓아둔 방석 위로 뛰어내린다”. “방금 전까지” 할머니가 있던 옷장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이의 철없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이는 할머니와의 이별을 상징한다. 여러 겹의 방석은 이모의 역할이다. 무작정 뛰어내리는 아이를 지상에 안착시키는 역할이다. 살아생전 할머니가 하던 것을 이모에게 요구하는 조금은 과격한 행동이다. 그런 행동을 통해 이모에 대한 아이의 요구와 기대는 점점 신뢰로 변하고 있다. 아이의 기대와 믿음이 커갈수록 이모는 허리를 더 낮춰 아이의 비위를 맞춘다. 아이의 행동은 점점 도를 넘는다. “벽을 두드”리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닌다.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하지만, 사람들은 야단을 치기는커녕 “밥맛이 좋”다거나 “비가 오지 않”는다 등 딴청을 피운다. 무언가 죄를 지은 분위기다. 왠지 공범의 냄새가 난다. 이런 행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아이는 급기야 옆 호실에서 “하얀 그릇”을 가지고 온다. ‘하얗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그릇’은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하얀 그릇”을 앞에 놓고 “수저로 식탁을 두드”림으로써 심적으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는 사랑하는 할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기도 하다. 하여 가장 아끼는 “분홍 스티커를 할머니” 영정에 붙인다.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금방 받아들이고, 심각하다가 천진난만한 행동은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무섭다” 했지만, 그래서 화자는 안도한다. “내 등을 두드”리는 행위는 원망과 화해의 몸짓이다. 이모의 등을 두드리며 조카는 무슨 말을 했을까. “왜 나를…” 하면서 울었을 것 같다. 여기서 서두의 나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조카만의 규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아직 나는 이모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시의 결말에서야 비로소 아이는 이모인 나를 받아들인다. “쑥/ 뼛속에서 나오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나와 아이의 관계는 단순히 이모와 조카 사이일까. 만약 엄마와 자식 관계라면, 친정엄마에게 맡겨놓은 자식이라면, 이모라고 부른 엄마라면, 그런 사실을 아이도 알고 있다면 시적 화자인 이모와 그 가족은 아이를 그런 상황에 놓이게 한 공범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엄마인 “나는 무릎을 모으고/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는 쉽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나서야 아이가 “기쁜 얼굴로 나를” 엄마로 인정해 줄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모와 조카의 갈등이 시가 전개될수록 점점 해소되는 과정에서 엄마와 자식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조카에서 자식으로, 이모에서 엄마로 환원된다. 이모가 엄마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 문장 뒤에 숨은 시적 진술이 훤히 드러나고, 결말의 아쉬움도 해소된다. 이런 관계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 시는 그냥 ‘난해한 시’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 김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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