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보다 더 멀리, 시장보다 더 깊이: 여기는 상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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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보다 더 멀리, 시장보다 더 깊이: 여기는 상하이

노블레스 2026-01-16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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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롱라티에서 열린 〈Judy Chicago and Stanley Whitney: Call and Response〉전 전경.

롱라티 파운데이션 외관.

Georgia Gardner Gray, Corps, Oil on Canvas, 240×200cm, 2025.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끝내 다 알 수 없는 도시 상하이. 쑤저우 강변의 1930년대 은행 창고는 오늘날 예술을 저장하고 실험하는 ‘수허하우스(Suhe Haus)’로 다시 태어났다. 1931년 건축설계사무소 앳킨슨 & 댈러스(Atkinson & Dallas)가 설계한 아르데코 양식의 이 건물은 지금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그야말로 현대판 ‘보물 창고’가 되었다. 이곳에는 아치 갤러리, P.art 그룹, 샹아트 갤러리, 수파 아트 스페이스, 탕² 익스체인지, 더 패럿, 그리고 최근 문을 연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까지 다양한 성격의 예술 공간이 층위를 이루며 공존한다. 그러나 수허하우스가 문화 예술 허브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초기 앵커 역할을 한 주체는 단연 롱라티 파운데이션(Longlati Foundation)이다.

롱라티는 ‘경도(longitude)’와 ‘위도(latitude)’를 합성한 이름이다. ‘종횡’의 단순한 지리적 은유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세계를 가로지르고 시간을 횡단하겠다는 선언이다. 재단은 여성 예술가와 문화적 소수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에서 누락된 목소리를 복원하는 동시에, 창작  ·  연구 · 전시 · 수집이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울러 비서구적 관점과 지역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 담론을 형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공동 창립자 지하오 첸(Zihao Chen)의 “시간보다 더 멀리, 시장보다 더 깊이”라는 말처럼 롱라티 파운데이션은 오랜 결핍과 침묵을 되돌려놓기 위해 장기적 연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첫 번째 전시 〈Call and Response〉가 가장 좋은 ‘사건’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가짜 뉴스”라 비틀고, MoMA를 “Museum of Men’s Art”라 풍자한 주디 시카고와 오랫동안 미술계 주류 담론의 바깥에서 조용히 색과 리듬의 언어를 구축해온 흑인 추상화가 스탠리 휘트니의 2인전은 롱라티의 사명을 가장 또렷하게 증명한 전시로 평가된다. 먼저 주디 시카고는 2002년, 중국 여성 작가들과 함께 모계사회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윈난-쓰촨 접경의 루구호까지 걸으며 “만약 여성이 세계를 이끈다면(What if women ruled the world)?”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역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생생히 기록한 이 프로젝트는 동시에 중국 내 여성 예술가의 존재를 새롭게 호명한 사건이기도 하다. 롱라티는 이 2002년 루구호 행보와 그 기억을 ‘잊힌 서사’로 인식하고, 2020년 첫 전시에서 이를 다시 호출한다. 중국 여성 작가와 소수민족 여성들의 공동 걷기 실험은 경계의 통과를 수행하는 미학적 · 사회문화적 행위로, 유목적 사유와 비서구 여성 서사의 형성이라는 롱라티의 핵심 비전을 구현한다.

2025년 10월 25일까지 롱라티에서 열린 〈Sarah Ball: Oh! You Pretty Things〉전 전경.

롱라티 파운데이션 창립자 지하오 첸.

Georgia Gardner Gray, The Christmas Party, Oil on Canvas, 200×240cm, 2025. Photo by Joerg Lohse. Courtesy of the Artist and Sadie Coles HQ, London.

한편 스탠리 휘트니는 또 다른 방식으로 롱라티의 철학을 확장했다. 흑인 화가로서 “흑인 예술가는 흑인의 경험을 직설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시대적 압박에 직면한 그는 정치적 구호 대신, 색과 리듬이라는 추상 언어를 택했다. 재즈의 즉흥성과 호흡을 화면에 번역하며, 그는 흑인의 정체성을 해설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색과 리듬이 스스로 연주하듯 흘러가게 했다. 주체를 말로 정의하는 대신, 그 자체로 화폭 위에 살아 숨 쉬게 했다. 그의 추상은 곧 자기 방식으로 세계를 말할 권리였으나 이미 백인 남성 작가들이 차지한 추상회화의 세계에서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롱라티는 첫 번째 전시를 통해 그가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그려온 자율성과 해방의 윤리를 지지했다.

주디 시카고와 스탠리 휘트니에 의해 시작된 롱라티의 실험은 지리적 좌표처럼 세계를 가로지르고 교차하는 유목적(nomadic) 예술 연구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인데, 얼마 전 전시를 끝낸 세라 볼(Sarah Ball)은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볼의 초상들은 말하지 않는다. 너무나 강력한 고요 속에서 관람객은 비로소 익명의 얼굴, 중성적 표정, 절제된 표면 아래 젠더와 계층, 정체성과 사회적 시선이 켜켜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볼의 인물들은 관람객을 응시하며 되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보았고, 누구를 보지 않았는가?’ 볼은 ‘얼굴’과 ‘스타일’이라는 가장 오래된 장치로 정체성과 시선의 윤리를 재정의했다. 그 침묵 속에서 ‘문화적 소수성’에 대한 롱라티의 질문은 다시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2026년 2월 7일까지 열리는 조지아 가드너 그레이(Georgia Gardner Gray)의 〈Metal Madonna〉전은 오늘의 여성이 생존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자기 관리를 파티와 피트니스센터, 사무실과 욕조, 지하철이라는 친근한 도시의 무대 위에 생생하게 펼쳐낸다. 당당한 자신을 ‘연기’하며 전진하는 야망에 찬 그 이면에 만성적 피로와 고립을 안고 살아간다. 롱라티는 ‘여성성’을 단일한 범주로 가두지 않는다. 이상화된 이미지가 아닌 실제의 몸과 목소리, 복잡한 정동을 가진 여성들을 무대 위로 올려 조명을 비춘다. 외면당하던 진짜 목소리는 데시벨을 높이고, 예술사 속 ‘여성’의 결은 다시 짜인다.

지금까지 롱라티의 주요 행보에서 보듯 재단이 선택한 ‘긴 시간의 미학’은 동시대 중국 미술 생태계 속에서 드물고도 견고한 방향성을 구축하고 있다. 예술은 과거의 결핍을 기억하며 미래의 서사를 짓는다. 롱라티 파운데이션은 세계의 균열과 공백을 응시하며 무엇이 기록되고, 무엇이 잊히는지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 새로운 주체들이 마침내 가시권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이 점화되는 현장을 지금 이 도시 상하이에서 목격하고 있다. 세계 미술 지도에 새로운 좌표가 찍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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