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우한나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부암동 하우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아티스트 우한나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부암동 하우스

엘르 2026-01-16 00:00:00 신고

부암동 작업실 앞에 선 우한나 작가. 앞에 놓인 컬러플한 오브제는 ‘My Job’ ‘Swinging’ 일부.

부암동 작업실 앞에 선 우한나 작가. 앞에 놓인 컬러플한 오브제는 ‘My Job’ ‘Swinging’ 일부.


3D 모델링 작업의 일부가 놓인 책상. 박쥐와 골반, 여러 짐승의 턱 뼈, 서양 난 뿌리 등 주로 연필로 그렸던 형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지체에 패브릭을 입혀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생명체를 만들 예정이다. 창가의 두툼한 커튼 역시 우한나가 직접 만든 것.

3D 모델링 작업의 일부가 놓인 책상. 박쥐와 골반, 여러 짐승의 턱 뼈, 서양 난 뿌리 등 주로 연필로 그렸던 형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지체에 패브릭을 입혀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생명체를 만들 예정이다. 창가의 두툼한 커튼 역시 우한나가 직접 만든 것.


2026 아트 바젤 홍콩에서 발표할 신작 ‘Bag with you’를 들고 있는 우한나 작가. 위에는 또 다른 조각의 뼈대가 될 오브제가 매달려 있다.

2026 아트 바젤 홍콩에서 발표할 신작 ‘Bag with you’를 들고 있는 우한나 작가. 위에는 또 다른 조각의 뼈대가 될 오브제가 매달려 있다.


다양한 작품이 놓인 거실. 바닥에 놓인 오브제는 ‘My Blue’. 벽에 기댄 패브릭 회화는 ‘Nirvana’. 옷걸이에 매달린 인형은 우한나가 만든 작업실 마스코트 친년이.

다양한 작품이 놓인 거실. 바닥에 놓인 오브제는 ‘My Blue’. 벽에 기댄 패브릭 회화는 ‘Nirvana’. 옷걸이에 매달린 인형은 우한나가 만든 작업실 마스코트 친년이.


부암동에 온 건 지난여름이죠. 마당에 풀이 무성했겠어요

잡초가 제 키만큼 자랐더라고요. 남편이 중간중간 예초했는데도 2주 만에 그렇게 된 거였어요. 수습하느라 정신없었죠. 아직 봄을 지낸 적 없어서 어떨지 걱정이에요(웃음). 차근차근 관리해야죠.


이전 작업실은 성북동이었어요. 작업실 이전 계기는 지갤러리에서 제안했어요. “이 자연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과 함께(웃음). 전원생활 경험은 없지만 대입으로 서울 상경 이후 몇 번 주택에 살았던 적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일거리가 많네요. 진짜 힘든 건 집 앞에 있는 오르막길을 관리하는 일이에요. 낙엽이 끝도 없이 쌓이고, 겨울엔 염화칼슘 안 뿌리면 답이 없어요. 힘들지만 계절이 피부로 와닿을 때면 ‘원래 삶이 이런 거였지’ 싶어요. 딱딱한 벽에 갇혀 모르고 살았던 흐름을 의식하게 되거든요. 오만 새가 드나들고, 개구리나 다람쥐도 봐요. 서울이지만 조금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에요.


그야말로 생명에 둘러싸인 ‘요새’네요.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나요

집에서 운전해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오는데, 그때마다 산이 저를 감싸는 기분이 들어요. 산이 이곳 생활을 괴롭게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환경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도착하자마자 작업을 시작해 전날 적어둔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지워 나가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8시 퇴근인데 너무 몰입해서 체감상 한두 시간만 흐른 것 같아요. 끼니는 중간중간 ‘생존 요리’ 정도로 대충 해결하고요(웃음).


본래 주택이었던 터라 방이 여러 개인데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다시피 패브릭 작업은 본채에서 이뤄지고, 너른 홀에서 대형 조각을 작업해요. 요즘은 작은 조각 작업이 늘어나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별채에서는 컴퓨터 작업과 드로잉을 합니다. 별채 주방은 남편이 직접 리모델링했어요. 주방부터 서랍장, 책상까지 초록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바깥 풍경이 늘 초록이라 실내도 자연스럽게 그 색을 많이 썼는데, 안팎의 색이 이어지니까 안정감이 느껴져요.


주방이 있는 별채. 벽에 걸린 패브릭 회화는 ‘With Them’. 테이블 위의 조각 작품은 ‘Thinker’. 바닥에 놓인 둥근 오브제는 ‘Egg’.

주방이 있는 별채. 벽에 걸린 패브릭 회화는 ‘With Them’. 테이블 위의 조각 작품은 ‘Thinker’. 바닥에 놓인 둥근 오브제는 ‘Egg’.


각종 바느질 재료가 색깔별로 모여 있는 작업 공간. 다리미판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조각의 일부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패브릭 표면에는 꽃잎이나 곤충의 날개,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다양한 생물의 신체적 형태에서 착안한 패턴을 새겼다.

각종 바느질 재료가 색깔별로 모여 있는 작업 공간. 다리미판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조각의 일부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패브릭 표면에는 꽃잎이나 곤충의 날개,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다양한 생물의 신체적 형태에서 착안한 패턴을 새겼다.


 전시 구성의 일부로 직접 채색한 옷걸이, 설치미술 작업의 토대가 된 드로잉, 뉴욕 체류 중 새롭게 시작한 파스텔 드로잉이 걸린 벽.

전시 구성의 일부로 직접 채색한 옷걸이, 설치미술 작업의 토대가 된 드로잉, 뉴욕 체류 중 새롭게 시작한 파스텔 드로잉이 걸린 벽.


2019년부터 이어온 ‘웨어러블 오브젝트’가 놓인 주방.

2019년부터 이어온 ‘웨어러블 오브젝트’가 놓인 주방.


각종 패브릭부터 재봉틀과 실, 3D 프린터, 드로잉 도구까지. 방마다 다양한 도구로 채워져 있어요. 그중 신체 일부처럼 즐겨 쓰는 도구가 있다면

바늘이요. 이젠 정말 제 몸 같아요.


대학 시절부터 패브릭을 재료로 조각과 설치미술 작업을 해 왔어요. 왜 패브릭에 끌렸을까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해서 대학에 들어가니 연필과 붓이 지겨워졌어요. 한 번은 과제로 제가 덮던 이불을 이용해 유니콘을 만들었는데,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재료에서 나오는 서툶과 빈틈이 매력적이더라고요. 회화나 조각은 재료마다 내야 하는 일정한 퀄리티가 정답처럼 존재하는데 패브릭은 그게 덜했어요. 이 점이 신선했고, 무엇보다 바느질이 너무 재밌었어요.


바느질을 배운 적도 있나요? 매체로서 바느질의 매력은


엄마 친구 분께 재봉틀 쓰는 법만 배웠지 거의 독학이에요. 이모가 준 재봉틀과 싱거 미싱을 작업실에 들여놓고 “이걸로 괴물을 만들 거야!”라고 했죠(웃음). 제게 바느질은 ‘계속 이어지는’ 조각이에요. 이쪽으로 들어가 저쪽으로 나오고, 어떤 움직임도 허투루 가지 않고 다 연결돼요. 바늘은 형태를 견인하고 ‘동세’를 만들어요. 수정이 쉽다는 점도 좋아요. 잘못 들어서도 실만 ‘쏙’ 빼면 흔적도 거의 안 남죠.


근래엔 나뭇가지나 알루미늄을 뼈대로 사용한 단단한 조각 작품도 선보이고 있어요. 옆방에서는 3D 프린터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네요. 작업 과정에도 변화가 많았겠어요

최근 지브러시(ZBrush)라는 3D 드로잉 툴을 많이 익혔어요. 이젠 손으로 그릴 만큼 익숙하게 다루고 있죠. 예전엔 외주를 줬는데 직접 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배우기 시작했어요. 입체로 생각해야 하니 머리가 여간 아픈 게 아니지만, 요샌 머릿속 이미지를 360° 회전하며 떠올리기도 해요. 앞으로도 제 작업에 많은 영향을 줄 거예요.


패브릭으로 신체 장기를 본뜬 ‘웨어러블 오브젝트’(2019)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한쪽 신장이 기형이라 제 기능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작업의 계기였어요. 현재 건강은 어떤가요

지금도 외신장이고 큰 문제는 없어요. 다만 신장이 하나이니 매년 추적 검사를 합니다. 잃어버린 장기에서 출발했지만 이후엔 장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것들을 만들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몽을 자주 꾸는데, 한창 심할 때 ‘나이트메어 서커(Nightmare Sucher)’를 만들었죠. 이름 그대로 악몽을 빨아들이는 존재예요.


연필과 파스텔, 과슈로 생명체를 상상하는 드로잉 작업이 이뤄지는 방.

연필과 파스텔, 과슈로 생명체를 상상하는 드로잉 작업이 이뤄지는 방.


마당 한 켠에 뼈대만 남은 ‘Alive’는 본래 패브릭을 씌우는 작품이지만 지금은 땅에서 올라온 덩굴이 그 위를 감싸며 새로운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마당 한 켠에 뼈대만 남은 ‘Alive’는 본래 패브릭을 씌우는 작품이지만 지금은 땅에서 올라온 덩굴이 그 위를 감싸며 새로운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작업실 구석구석을 채운 다양한 재료들.

하나같이 기발하고 독특해요. 우한나표 크리처의 모티프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 취향인데 신체 중엔 귀와 손, 뇌의 해마나 시상하부 같은 구조가 재밌어요. 또 순환하는 고리처럼 어디부터 꼬였는지 모르는 구조에도 끌려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 비이성적일 수 있듯, 양극단이 결국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완벽할 수 없는 모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형태’에 관심이 많아요.


‘밀크 앤 허니(Milk and Honey)’(2023)도 그런 바탕에서 나왔죠. 중력에 따라 흐르고 처지는 여성의 가슴, 노화하는 피부, 날개를 편 박쥐를 동시에 형상화한 작품이에요. 2023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작으로, 어워드 도전 당시 기획서에 남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나의 늙음은 너의 젊음을 경험했기에, 나의 젊음은 너의 늙음을 맞이하기 위해, 건배.”

제가 만든 건배사예요. 사람들은 천의 주름을 아름답다고 하면서 얼굴의 주름은 추하게 생각해요. 각자의 주름과 장식으로 휘황찬란한 존재들이 모여 동등하게 칭찬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실에선 어렵지만 작업에선 가능하길 바라면서요.


신체, 노화, 신화적 생물 등 ‘생명’을 일관되게 다뤄왔어요.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제가 살아 있으니까요. 생을 감각하며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어요. 자고 일어날 때 문득 신기하고, 의식과 무의식은 어떻게 나뉠까 생각해요. ‘좋다’ ‘예쁘다’ ‘귀엽다’ 같은 사람들의 평가 체계도 의심하고요. 이런 발상이 결국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조물주 혹은 관찰자,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까운 것 같나요

과거엔 조물주였는데, 요샌 관찰자 같아요. 조물주치고 능력이 없는 것 같아서(웃음). 작품이 순전히 내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이 축적돼서 나오는 거니까요.


요샌 무엇을 관찰했나요

3D 드로잉을 익히다 보니 익숙한 형태도 다시 들여다보게 돼요. 일부러 마당의 풀들을 살펴보고 종류를 세보기도 하죠. 집에서 난을 많이 키우는데 꽃이 ‘펑펑’ 폈어요. 꽃봉오리가 오므리고 있을 때, 살짝 열릴 때, 활짝 필 때 등의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관찰해요.


얼마 전 지갤러리에서 선보인 개인전 〈품새〉의 조각들은 이전 작품에 비해 좀 더 독립적인 존재로 발전한 것 같았어요. 저마다 사연과 감정이 느껴져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였죠

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가 관계해 온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떠나보낸 존재들을 생각하기도 했고, 함께 사는 가족을 떠올리며 만들었죠. 그래서 각 작품이 취하는 태도와 모션이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균형이 많이 틀어져 있거든요. 제가 느끼는 제 신체는 한쪽 팔이 두 배로 커요. 하지만 그런 변형된 모습들이 노력의 결과이고, 누군가의 ‘품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또한 멋있다, 받아들이자고요.


〈품새〉 이후 당신의 관심사는 어디로 향할까요

〈품새〉에서는 개인의 정체성과 태도에 집중했는데, 전시로 다 쏟아내고 나니 그런 존재들이 사는 ‘서식지’가 궁금해졌어요. 풍경을 평면화하던 작업을 다시 이어가면서 그 세상을 상상하려고 해요.


확실히 우한나라는 사람은 현실과 상상 사이에 발을 걸친 느낌이에요

맞아요. 저는 또 다른 그 세계를 ‘오합지졸의 유토피아’라고 불러요. 제멋대로 생긴 존재들이 자기 모양 그대로 모여 사는 세상이죠. 제 작업 중에 이런 게 있어요. 갈라진 땅 사이에서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있는 자화상이죠. 예전엔 다리가 찢어질까 봐 불안했거든요. 근데 최근 발레를 배우면서 ‘그냥 다리를 찢으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젠 일자로 찢은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고 웃으며 너머를 바라보는 상상을 합니다(웃음). 제가 두 세계를 잇는 ‘다리’ 같아요. 그래서 이 부암동 작업실이 좋아요.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