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여제’ 김연경의 은퇴는 인천 흥국생명에 적지 않은 공백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시즌까지 팀의 공격과 분위기를 동시에 책임졌던 상징적인 존재가 빠진 만큼 전력 약화는 자연스러운 전망이었다.
그러나 요시하라 토모코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특정 선수로 공백을 채우기보다 팀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쪽이었다.
그 결과는 14일 열린 도로공사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날 흥국생명은 경기 지표만 놓고 보면 분명 불리한 흐름에 놓여 있었다. 리시브 효율은 20%에 머물렀고, 도로공사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불안정한 리시브를 감수하면서도 공격의 끈을 놓지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점수를 쌓아갔다.
이 과정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은 선수가 외국인 공격수 레베카였다.
레베카는 이날 58차례 공격을 시도했다. 이 중 30회 이상이 오픈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레베카는 그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높은 결정력을 유지하며 절반이 넘는 성공률을 기록했다. 흥국생명이 접전 승부에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조직적인 세트 플레이는 국내 선수들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만, 리시브나 디그 이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오픈 공격은 다른 영역이다.
레베카는 올 시즌 오픈 공격 성공률 부문에서 리그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실바와 모마 등 정상급 공격수들과 비교해도 안정감 면에서 앞서 있다.
더 주목할 대목은 레베카의 변화 과정이다. 폭발적인 파워 대신 기술적 완성도와 범실 관리 능력을 끌어올렸고, 이번 시즌에는 전혀 다른 유형의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요시하라 감독의 팀 운영이 있다. 흥국생명은 고정된 주전 체제보다 상황에 맞춘 조합을 택한다.
리시브 안정이 필요할 때는 경험 많은 베테랑을 투입하고, 공격력이 요구되는 국면에서는 과감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은퇴를 선언했다가 복귀한 이나연을 주전 세터로 안착시킨 결정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경의 이름이 빠진 흥국생명은 더 이상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리시브가 흔들려도 버틸 수 있고, 경기 흐름이 불리해도 계산이 선다.
이 변화는 성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흥국생명(승점 39)은 최근 3연승을 달리며 리그 3위로 올라섰다.
지금의 흥국생명은 단순히 잘하는 팀이 아니다. 분명히 이길 줄 아는 팀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