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은 13일 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기습 의결했다. 제명은 당규상 가장 높은 징계로 당적이 박탈된다.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게시판 사태로 한 전 대표를 윤리위에 회부한 지 2주 만이다.
당 중앙윤리위는 13일 오후 5시부터 자정을 넘긴 심야까지 6시간 넘게 마라톤 회의를 진행한 끝에 "피징계자 한동훈을 당헌·당규 및 윤리위 규정 제20조 제1·2호, 윤리규칙 제4·5·6조 위반을 이유로 제명에 처한다"고 밝혔다.
당규에 따르면 제명은 윤리위 의결 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장동혁 대표가 최근 당원게시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수차례 공언해온 만큼 최고위에서 의결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리위 "가족 게시글 인정…조직적 경향성 의심" "중징계 없으면 악성 비방 난무할 것"
윤리위원회는 결정문에서 한 전 대표 가족이 2개 IP를 공유하며 게시글을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윤리위는 "한동훈은 당게 사건과 관련해 가족들이 글을 올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며 "따라서 한동훈의 가족들이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6명의 작성자가 2개 IP를 공유하며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게시글을 작성한 점, 같은 내용의 '복붙'이 시차를 두고 나타난 점 등을 들어 "통상적인 격정 토로나 비난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도하며 조직적 경향성마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 본인의 게시글 작성 여부에 대해선 "형사사법적 절차가 요구하는 수준에서 실제로 작성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면서도 "영미법의 민사상 '상대적 증거의 우월' 수준에서는 합리적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동명이인 한동훈이 가족과 같은 IP를 사용했다는 점, 2024년 11월 6일 새벽 셧다운 동안 한동훈·진은정 명의 글이 대량 삭제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윤리위는 "가족의 심각한 일탈 행위에 대해 피조사인은 윤리적, 직업윤리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진다"며 "전직 정당 대표로서의 지위와 직분에 부합하는 관리 책임과 신의성실이라는 직업윤리, 그리고 유력 정당 전직 대표로서 정치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리위는 제명 사유로 '일반억제(general deterrence)' 필요성을 들면서 "본 사건을 중징계 없이 지나칠 경우 이 결정이 선례가 돼 앞으로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은 당 대표를 포함한 당직자 및 당원 자신과 그 가족들의 악성 비방·비난 글과 중상모략, 공론 조작 왜곡이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난무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정문은 한 전 대표와 친한계가 윤리위를 공격한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 "TV조선 강적들 등 유력 미디어에 본인이 직접 출연하거나 정치적 측근들이 출연해 음해하는 방식으로 중앙윤리위원회 위원들과 그 가족에 대한 중대한 명예훼손과 심리적 테러를 가했다"며 "이는 테러리스트의 전술에 해당하는 것이지 정당의 전직 대표로서 신뢰받을 정치인의 자질과 품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한동훈 "민주주의 지키겠다"
우재준·김종혁·박정훈 등 친한계 의원들 즉각 반발···"징계 이유는 탄핵 찬성 보복"
한 전 대표는 제명 결정 직후 SNS에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친한계 인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우재준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당무감사위원회에서 조작된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객관적으로 징계할 만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동훈을 징계한 이유는 결국 탄핵 찬성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상천외한 논리만 늘어놓으며 정작 해야 할 법적·정치적 방어는 하지도 않은 채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이 이제는 애꿎은 한동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며 "도대체 우리 당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망가졌는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아직 통보받은 게 없지만 보도가 사실로 보인다"며 "필요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 대표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어게인 세력을 앞세워 정당사에 남을 최악의 비민주적 결정을 내린 장동혁 대표는 최고위에서 이 의결을 뒤집어야 한다"며 "사익을 위해 당을 선거 패배의 길로 몰고 있는 당 지도부를 더 이상 두고보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민영 미디어대변인 "여론 조작 등 해당 행위 실체 명확하고 절차 문제 없어"
반면 장동혁 체제에서 임명된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한 전 대표의 입장에 대해 "우리는 드루킹을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 대변인은 "여론 조작 등 해당 행위의 실체가 명확하고 당헌·당규상 정해진 절차를 적확하게 따른 만큼 법원에서 문제 삼을 소지가 전혀 없다"며 "그만 정치권을 떠나 자중하며 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전 대표에 대한 중앙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은 당무감사위원회에서 상정한 안건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논의한 결과"라며 "정치적 논란은 있을 수 있어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장동혁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당 관계자는 "당초 한 전 대표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면서 법리적으로 문제를 키운 책임"이라며 "당 입장에서도 2월부터 지방선거에 맞춰 '후보의 시간'이 가동되는 만큼 그 전에 당원들이 발본색원을 요구한 문제들을 빨리 매듭짓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검사 둘 다 단죄"…홍준표의 직격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어젯밤은 지난 4년간 나라를 혼란케 하고 한국 보수진영을 나락으로 몰았던 정치 검사 두명이 동시에 단죄를 받는 날이 되었다"며 "한명은 불법계엄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한명은 비루하고 야비한 당원게시판 사건으로 제명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홍 전 시장은 "정치검사 둘이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분탕질 치던 지난 4년은 참으로 혼란스럽던 시간이었다"며 "제명처분이 끝이 아니라 그 잔당들도 같이 쓸어내고 다시 시작 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비리와 배신을 밥먹듯 하는 그런 사람들 데리고 당을 다시 세울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건 일부 보수 언론에서 말하는 뺄셈정치가 아니라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정치"라고 강조했다.
상임고문단 "양측 다 한발씩 물러서라"
앞서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1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오찬을 갖고 한 전 대표를 무리하게 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상임고문단은 특히 한 전 대표를 내친다면 당이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며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 양측 모두 한발씩 물러날 것을 주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리위 제명 의결 시 6월 지방선거 앞두고 내홍 최고조
윤리위의 제명 의결로 국민의힘 내홍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6월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당 분열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제명이 확정될 경우 한 전 대표는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친한계 의원들이 최고위 의결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우재준 최고위원 등 일부 지도부 인사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해온 만큼 15일 예정된 최고위 회의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12·3 계엄 이후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을 벌여온 국민의힘이 전 대표 제명이라는 초강수로 내부 갈등을 정리하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분열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폴리뉴스 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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