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어디서나 언제나 인간은 아무도 고통 없이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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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시인의 얼굴] 어디서나 언제나 인간은 아무도 고통 없이 살지 않았다

독서신문 2026-01-12 09:47:02 신고

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벙어리야, 벙어리야.
소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소는 가슴 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어디서나 고달프지만
소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소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

코뚜레에 꿰여 끌려 다니면서도
소는 자유를 잃지 않으려 남을 절대 부리지 않는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 하는
벙어리야, 벙어리야, 벙어리야,
소는 무거운 짐 혼자서 끌고
소는 온몸으로 이야기하면서 간다.
슬픈 이야기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천천히 들려 준다.

-권정생,「소 4」

 

어디서나 언제나 인간은 아무도 고통 없이 살지 않았다

“어디서나 언제나 인간은 아무도 고통 없이 살지 않았다”고 말한 이는 권정생입니다. 그를 떠올리면 마음에 잔잔한 물수제비가 이어집니다. 교회 종지기였으니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콰지모도가 자꾸 떠오릅니다. 몽실언니도, 강아지풀도 어른거립니다. 이 모두 고통 속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함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미움받은 자들입니다. 삶의 고통이 뭘까요. 그를 생각하면 가난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사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까요. 사랑하지 못하므로 사랑받는 일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시 「소 4」는 권정생이 쓴 ‘소’ 연작시 일곱 편 중 네 번째입니다. 동시라고 부르는데요. 아이 시, 어른 시가 따로 있나요. 시는 시죠. 동시는 왠지 쉽게 쓴 것이고 그렇게 쓴 시라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더라도 ‘가슴에 하늘을 담는’ 일, ‘자유를 잃지 않으려 남을 절대 부리지 않는다’는 말, 온몸으로 하는 ‘슬픈 이야기’가 무언지 아이들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슬픈 이야기’에 흐르는 주조가 ‘고통’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른들이 그 이야기 들었으면 합니다. 벙어리 취급받아 아무 말 못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지막이 다가오는 아이 소리를 들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귀머거리가 아니니까요.

이 시를 읽으면 권정생은 자유에 대해 평생 이야기했네요. 그것은 소에게도 시인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얽매인 삶은 노예입니다. 아무리 숨 쉬고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면 산 것이 아니지요. 소는 온몸으로 말합니다. 모든 고통받는 것들도 모두 바짝 엎드려 숨죽여 말합니다. 이 ‘슬픈 이야기’는 백석이 시 「모닥불」에 담은 ‘슬픈 역사’입니다.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모두 모여 그 이야기에 귀 기울입시다.

■ 작가 소개 |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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