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가 런웨이를 점령했다. 이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노동의 가치가 마침내 조명받은 순간이다. 이번 시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여러 패션 하우스가 ‘노동’을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풀어 런웨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미우미우는 ‘워킹 우먼(Working Women)’이라는 테마 아래 런웨이를 식당과 작업장으로 꾸몄다. 현실적이면서도 유틸리티가 느껴지는 무대연출을 활용해 노동의 시각화를 강조한 것.
미우미우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일은 노력의 반영이며 보살핌과 사랑의 상징이다. 앞치마는 내가 좋아하는 옷 중 하나로 역사 속 여성의 진짜 고된 삶, 공장에서 가정까지 이어진 삶을 담고 있다. 이는 보호와 보살핌에 관한 것이며, 여성들의 노력과 고난의 상징”이라고 앞치마를 패션적 장치로 사용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VIVIENNE WESTWOOD, CHLOÉ, CALVIN KLEIN, MIU MIU
끌로에는 복고풍의 플로럴 패턴과 1950~1970년대 실루엣을 소환해 가정과 거실, 정원을 연상케 하는 룩을 전면에 내세웠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역시 집과 정원을 연상시키는 무대연출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서로 다른 접근이지만 모두가 삶의 현장을 패션 신의 언어로 소화하며 리얼리티를 강조한 셈이다.
이는 과연 단순한 트렌드일까 혹은 시대가 여성 노동을 다시 바라본 시발점일까. 앞치마는 오랫동안 가사노동과 계급, 여성성을 상징해 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중세 장인, 빵 굽는 사람들, 공방 노동자들이 착용한 노동 장비이기도 했다. 앞치마는 가사 노동의 이미지와 노동의 기능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인 상징을 의미한다. 여성의 노동은 오랫동안 저평가됐다. 가정의 사적 영역에 갇혀 있었기 때문.
이를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이 19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제기된 ‘가사노동 임금(Wages for Housework)’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는 가사 노동에 대해 국가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를 통해 가부장적 성별 분업 구조를 비판하고, 가사 노동의 사회적 가치 인정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촉진했다.
(왼쪽부터) ERDEM, KRONTHALER WESTWOOD, MIU MIU, BOTTEGA VENETA, RABANNE
특히 패션 신은 이런 사회 구조를 시각화하는 문화적 언어였는데, 1988년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기존 의복 관습을 해체하고 기능성과 유니폼 실루엣을 재조합하는 실험적 디자인을,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은 정체성과 젠더, 몸에 관한 코드를 패션에 녹여냈다. 2026 S/S 시즌의 앞치마는 복고 아이템도 가정적 이미지를 연출하는 소품도 아니었다.
여러 하우스들은 워크웨어와 유틸리티, 앞치마를 모티프로 사용해 ‘노동’을 패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팬데믹 이후 돌봄과 케어 & 서비스 노동이 사회적으로 재평가되면서 그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노동을 디자이너들이 발 빠르게 캐치해 패션으로 소화한 것이다. 로에베에 새로 부임한 디자이너 듀오 잭 맥콜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첫 2026 S/S 컬렉션은 보일러 수트 등 유틸리티 워크웨어 스타일을 녹여 아트와 실용성을 결합한 컬렉션을 공개했고 보테가 베네타 역시 기능적인 디테일을 차용해 도시적인 노동복 스타일의 룩을 런웨이에 올렸다.
워크웨어와 앞치마, 유틸리티 코드는 지난 몇 년 동안 축적된 사회적 피로와 돌봄의 재발견, 노동의 재정의를 향한 패션 신의 응답이다. 패션은 이미지로 말한다. 노동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다시 세우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우리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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