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문화예술인] 간송 전형필의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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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문화예술인] 간송 전형필의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뉴스컬처 2026-01-07 15:21: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이름은 한국 미술사의 가장 깊은 결을 따라 자리한다.전형필은 수집가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문화의 시간들을 붙잡아 오늘로 이어준 존재였고, 한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문화사의 흐름을 바꾼 주체였다. 시대가 무너질수록 그는 더 단단해졌고, 제도가 침묵할 때 개인의 결단으로 역사를 붙들었다. 그의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성취보다 자세가 오래 남는 유형의 유산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조건은 많은 이들에게 체념을 강요했지만, 전형필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분명히 만드는 계기였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식민지 엘리트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형필의 부는 편안함이 아니라 책임으로 작동했다.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만난 위창 오세창은 그에게 문화가 국가의 마지막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웠고, 이 인식은 평생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된다.

대학시절 간송 전형필. 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대학시절 간송 전형필. 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전형필의 수집은 취향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는 서화와 도자기, 불상과 고서를 통해 미적 쾌락을 누리기보다, 그것들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감당했다. 일본으로 넘어가던 문화재들을 되찾는 일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시대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는 문화재를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로 대했고, 그 태도는 오늘날 문화재 보존의 윤리적 기준으로 읽힌다.

전형필이 사들인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겸재 정선과 혜원 신윤복의 그림들은 한국 미술사의 정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 유물들이 오늘 이 땅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미술사적 성취 이전에 역사적 사건이다. 전형필은 문화재의 귀속을 우연에 맡기지 않았고, 그것을 인간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끌어왔다.

1938년 성북동에 세워진 보화각, 현재의 간송미술관은 전형필의 세계관이 공간으로 구현된 결과다. 개인이 모은 것을 개인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선언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문화적 실천이었다. 보화각은 수장고이자 공개의 장이었고, 소유와 공유 사이에서 문화가 가야 할 방향을 미리 보여준 장소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둘러싼 일화는 간송의 이름을 상징으로 굳히는 장면이다. 그는 값의 흥정을 거부하고, 문화의 가치를 금액 위에 놓았다. 이 선택은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문화적 신념의 발현이었다. 언어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 곧 민족의 지속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인식은, 그를 문화 보존의 윤리적 표상으로 만들었다.

간송 전형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간송 전형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한국전쟁은 전형필에게 또 다른 시험장이었다. 그는 포화 속에서도 문화재를 먼저 생각했고, 몸을 던져 시간을 벌며 유물들을 지켜냈다. 문화재를 품에 안고 피난길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미담을 넘어, 문화가 개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는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문화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광복 이후 전형필은 문화와 교육을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았다. 보성중·고등학교를 인수해 운영한 일은 교육 사업이 아니라, 문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통로를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재정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조차 그는 문화재를 마지막 선으로 남겨두었다. 문화는 위기 앞에서도 후퇴하지 않는 가치였다.

전형필의 말년은 고단했다. 재산은 사라졌고, 건강도 무너졌다. 그러나 그가 지켜낸 문화는 남았다. 쉰다섯의 짧은 생애는 한국 문화사에서 유난히 밀도가 높다. 전형필의 삶은 성취의 목록보다 견디고 버텨낸 시간들로 기억된다.

사후에도 간송의 정신은 개인의 전기를 넘어 제도와 연구로 이어졌다. 후손들은 수집품을 체계화하고 연구하며, 간송의 이름을 학문과 공공성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시선으로 문화의 의미를 갱신해왔다.

중국에 기증하는 석사자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중국에 기증하는 석사자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최근 간송미술관 앞을 지켜온 석사자상 한 쌍이 중국으로 돌아간 결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오랜 시간 한국에 머물렀던 유물을 원래의 문화적 맥락으로 돌려보내는 선택은, 소유보다 책임을 중시하는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은 반드시 붙잡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석사자상의 귀환은 간송 전형필이 남긴 기준을 현재로 호출한다. 문화는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존중과 신뢰 위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의 이동은, 전형필이 평생 실천한 문화관과 깊이 닿아 있다.

간송 전형필의 삶은 문화적 영웅담으로 소비되기보다, 하나의 기준으로 읽혀야 한다. 그는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시대를 통과했는지를 남겼다. 그의 이름은 오늘도 한국 문화의 윤리를 조용히 떠받치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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