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 이후 약물운전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는 4월 약물운전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는 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처방약 복용에 대한 정량적인 기준 등 사전 예방 체계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70대 택시 운전사 A씨가 교통사고를 내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약물 간이 검사에서 마약 성분인 모르핀이 검출되면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정을 의뢰해 정확한 복용 경위와 성분을 확인하고 있다.
모르핀이 검출됐다고 해서 곧바로 마약을 복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트라마돌(진통제)이나 디히드로코데인(기침·가래약) 등 일부 성분은 체내에서 모르핀 유사체로 작용해 간이 마약 검사에서 모르핀 양성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고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약물운전에 대한 불안은 커지고 있다. 마약류를 복용하지 않았더라도, 기존에 복용하던 처방 약의 부작용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졸음이 유발돼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는 방송인 이경규씨가 공황장애 치료제를 복용한 상태에서 운전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논란이 됐다. 해당 약물은 나른함과 집중력 저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벤조다이아제핀계로 알려졌다. 지난 2일에는 유명 여성 인터넷 방송인 B씨가 서울 광진구 한 대로변에서 전봇대를 들이받아 약물운전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당시 B씨는 "처방받은 수면유도제를 복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에서도 증가세는 뚜렷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약물·마약 관련 교통사고는 2019년 2건에 불과했으나 2024년에는 23건으로 5년 새 10배 이상 늘었다. 사고 대부분은 수면제 복용 또는 수면내시경 직후 운전 중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약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례도 빠르게 늘었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물운전으로 인한 면허 취소는 2020년 54건에서 2021년 83건, 2022년 80건, 2023년 128건, 2024년 163건으로 4년 새 3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약물운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처벌 수위를 높인 약물운전 관련 법 개정안이 오는 4월 시행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약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징역 1년 이상 1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가 적용됐지만, 개정 이후에는 징역 2년 이상 15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로 상향됐다.
사망 사고에 대한 처벌도 한층 무거워졌다. 기존에는 무기징역 또는 징역 3년 이상이었으나, 개정안에서는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으로 최소 징역형 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개정안 역시 '어떤 약을 어느 정도 복용했을 때 운전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음주운전의 경우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약물운전은 복용 약물의 종류·농도·운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일된 판단 기준이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으로는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벌만 강화된다면 일반 시민, 특히 고령층은 어떤 약이 위험하고 얼마 동안 운전을 피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기 어렵다"며 "사전에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의료진의 고지 의무를 분명히 하는 제도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약학계는 약물 특성에 따른 단계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약물은 종류가 방대해 음주운전처럼 단일 수치로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약물 특성에 따라 위험도를 등급화하고 복용 후 최소 운전 금지 시간을 설정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국·의료 시스템을 통한 사전 관리 강화도 대안으로 거론됐다. 김은혜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약준모) 부회장은 "해당 약물의 처방 일수 제한,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알람 강화, '내가 먹는 약'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사용자 알림 등 세 가지 축으로 사전 관리 체계를 촘촘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운영 중이다. 영국은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처방약 목록을 안내하고, 졸림이나 반응속도 저하가 나타날 경우 복용 후 일정 시간 운전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코데인·모르핀 계열 진통제는 복용 후 최소 24시간, 수면제나 강한 항불안제는 24~48시간 운전을 자제하도록 안내하는 등 '시간 기준' 중심의 권고가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고령자들에게 약물운전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고령층은 만성질환으로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많고, 간·신장 기능 저하로 약물 대사가 늦어 부작용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 교수는 "고령층은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이 커질 수 있지만, 운전을 제한하는 문제는 기본권과도 연결된다"며 "이 문제에 대해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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