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유가①] 유가는 내려왔는데 주유소 가격은 멈췄다… ‘K-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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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유가①] 유가는 내려왔는데 주유소 가격은 멈췄다… ‘K-유가’

뉴스로드 2026-01-05 23:04: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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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전광판에 휘발유·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였지만, 환율과 세금·유통 구조 영향으로 주유소 판매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전광판에 휘발유·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였지만, 환율과 세금·유통 구조 영향으로 주유소 판매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최근 국제유가는 분명히 내려왔다. 2022년 3월 11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약 160 리터)당 122 달러였지만, 지난 2일에는 60.32 달러로 떨어졌다. 반토막이 난 셈이다. 2022년 3월 2주차 국내 휘발유 가격은 1862원, 경유는 1710원이었다. 당시 환율은 1230원 중반이었다. 국제유가와 환율을 감안하면 요즘 기름값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5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622.99원, 서울 평균은 1688.33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평균은 전날보다 2.14원 하락했지만, 서울 평균은 2.65원 상승했다. 경유는 흐름이 더 뚜렷하다. 전국 평균 1723.26원, 서울 평균 1784.26원. 전국 평균은 1.44원 내렸으나, 서울은 2.89원 올랐다.

이달 2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60.32 달러로 전일 대비 1.27 달러 하락했다. 같은 날 국제 휘발유 가격은 71.59 달러(–0.15 달러), 경유는 79.38 달러(–0.89 달러)로 석유제품 가격도 동반 조정을 받았다. 달러 기준 원유와 정유제품 전 구간에서 가격은 분명히 내려왔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 유가를 즉시 반영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국의 주유 가격은 국제유가 뿐 아니라, 환율·세금·기대·변동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원가 계산은 달러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날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48.30원. 두바이유를 원화로 단순 환산하면 배럴당 약 8만7340원(60.32 달러×1448.30원)이다. 달러 기준 유가가 하락해도 환율이 이를 상쇄하면서, 원화 기준 도입가의 하락 폭은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국내 정유 시장에서 유가 하락 효과는 항상 환율이라는 중간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국제유가가 배럴(약 160 리터)당 1 달러 내려가더라도, 환율이 20~30원만 움직이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기 전에 상당 부분이 상쇄된다. 유가와 체감 가격 사이의 괴리가 반복되는 이유다.

세금 구조는 가격의 하방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현재 유류세는 휘발유 7%, 경유 10% 인하가 적용돼 각각 리터당 57원, 58원의 인하 효과가 유지되고 있다. 다만 국내 유류세는 정률보다 정액 비중이 높은 구조다. 국제유가와 제품 가격이 내려갈수록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최종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오기보다 버티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구조에서는 유류세 인하가 가격을 끌어내리는 지렛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정유사 가격 결정에서 유류세는 인하를 유도하는 요인이 아니라, 급등 국면에서 마진 훼손을 방어하는 장치에 가깝다. 국제유가가 내려도 주유소 가격이 즉각 반응하지 않는 배경이다.

정유·도매 단계에서 실질적인 기준은 원유가 아니다. 국내 공급가격은 실무적으로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여기에 원·달러 환율, 관세·부과금, 유통비용이 누적된다. 전주 국제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공급가를 산정하는 관행까지 감안하면, 국제유가 변동과 소비자 가격 사이에는 구조적인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3월 4주차 휘발유 가격은 2002원으로 가장 높았고, 경유가격은 한 주 더 지난 5주차에 191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원유 가격이 조정을 받아도 석유제품 가격의 하락 폭이 제한되거나 환율이 상승하면, 주유소 가격은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국제유가와 체감 가격 사이의 간극은 이 가격 결정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만들어진다.

가격이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미래 경로를 선반영한다는 점은 거시경제 분석의 기본 전제다. 로버트 루카스는 시장 가격이 현재의 수급보다 참여자들이 예상하는 향후 흐름에 먼저 반응한다고 정리했다. 국제유가가 조정을 받아도 반등 가능성이나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한, 정유·유통 단계는 인하를 즉각 반영하기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 흐름에서는 유가 하락이 일정 기간 확인되기 전까지 가격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반대로 상승 신호가 포착되는 순간, 가격 전가는 빠르게 진행된다. 이는 개별 의사결정자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구조의 결과다.

가격 변동을 제대로 읽으려면 정책 변화와 사건성 충격을 구분해야 한다. 토머스 서전트와 크리스토퍼 심스가 정리한 거시 분석의 핵심이다. 국제유가 하락이 이미 가격에 반영된 국면에서 지정학 변수나 금융 불안이 겹치면, 시장은 이를 추가 하락 요인이 아니라 새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가격 결정의 중심축은 하락 논리에서 불안 관리로 이동한다. 그 결과 가격 형성에서는 원가 하락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유가가 내려가도 주유소 가격이 즉각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변동성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변수가 아니다. 로버트 엥글이 정리한 바와 같이, 불확실성은 일정 구간에 군집하며 가격 결정 환경 자체를 바꾼다. 변동성이 확대된 국면에서는 조달·재고·운송·신용 비용 전반에 위험 프리미엄이 얹힌다. 이 프리미엄은 원가표에 별도 항목으로 찍히지 않지만, 정유사와 유통 단계의 가격 판단에는 구조적으로 반영된다.

그 결과 가격 인하까지는 확인과 시간이 더 지연되고, 상승 압력은 빠르게 전가된다. 주유 가격이 오를 때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려올 때는 둔감하게 움직인다는 체감은 우연이 아니다. 변동성이 가격의 방향보다 속도를 먼저 결정하는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구조에서는 단순한 유가 비교표만으로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가격 수준과 다음 가격에 대한 기대,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으로 축적된 불안,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 다섯 요소가 겹쳐진 결과가 지금의 주유소 가격이다.

다니엘 카너먼이 지적한 대로, 시장 참여자는 실제 변화보다 불확실성과 손실 가능성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긍정적 신호보다 환율 변동과 향후 가격 반등 가능성이 먼저 인식되는 순간, 가격은 원가의 산술 결과가 아니라 불안이 반영된 기대값으로 굳어진다.

지금 주유소 전광판에 찍히는 숫자는 국제유가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정액 중심의 세금 구조가 가격의 하방을 만들고, 환율이 기준을 바꾸며, 기대와 변동성이 인하 속도를 제약한 결과다. 국제유가가 더 내려가더라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문제는 유가가 아니라, 유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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