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고 믿었던 페이크 퍼, 진짜로 괜찮은 걸까? 페이크 퍼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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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고 믿었던 페이크 퍼, 진짜로 괜찮은 걸까? 페이크 퍼의 불편한 진실

코스모폴리탄 2026-01-03 00:00:00 신고

1 ALAÏA, 2 TOD’S, 3 Stella Mccartney, 4 JIL SANDER, 5 Dolce & Gabbana, 6 ETRO, 7 Marni, 8 ELIE saab, 9 PRADA, 10 ACNE studios

1 ALAÏA, 2 TOD’S, 3 Stella Mccartney, 4 JIL SANDER, 5 Dolce & Gabbana, 6 ETRO, 7 Marni, 8 ELIE saab, 9 PRADA, 10 ACNE studios

손끝을 스치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생생한 계절이다. 시어링, 롱 헤어, 컬러풀 퍼 등 옷차림에 깊이를 더하는 퍼 소재가 제철이다. 오랫동안 퍼는 성공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이전 세대에게 퍼는 단연코 럭셔리의 정수였고, 영화 〈캐롤〉을 비롯한 숱한 미디어와 캐릭터를 통해서도 권력과 지위를 상징하는 키 아이템으로 활용되곤 했다. 자기표현의 시대를 사는 젠지들은 이러한 퍼 스타일에 위트와 과장을 덧붙였다. 힙합 신은 퍼 코트가 내포한 부에 대한 열망을 ‘플렉스’ 문화와 결합해 트레이닝팬츠, 체인 네크리스와 후프 이어링을 매치한 뉴룩을 완성시켰고, 소식이 쉼 없이 업데이트되는 K팝과 소셜 미디어는 애니멀 프린트, 네온 컬러, 쇼트 재킷 등 퍼 소재가 가진 특유의 화려함을 365일 내세우며 계절의 금기를 깼다. 이 흐름에 따라 2025 F/W 런웨이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등장했다. 청키한 레트로 스타일을 선보인 아크네 스튜디오, 와일드한 분위기를 배가시킨 에트로, 리얼 퍼보다 수려한 롱 코트를 내놓은 질샌더, 하우스의 아이덴티티인 퓨처리즘을 교묘하게 매치한 라반, 형형색색의 팔레트에 포인트로 연출한 프라다 등 퍼 소재의 변주는 말 그대로 홍수를 이룬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F/W는 패션 에디터로서 꽤나 난감한 시즌이다. 적어도 내가 만든 화보와 칼럼에서만큼은 리얼 퍼를 소비하지 말자는 신념이 있어서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척하려는 의도는 없다. 단지 개인으로서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모피를 전시하지 않는 것’이라 여길 뿐. 이 신조는 패션계가 퍼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난 십수년간 눈에 띄게 바뀌었음을 피부로 느낀 계기가 됐다. 처음 마음먹었던 당시엔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광고 콘텐츠 제작(모피 화보였다) 업무를 거절해야 했고,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화보와 칼럼을 기획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다루는 ‘퍼 아우터 스타일링’ 화보에 쓸 만한 페이크 퍼 의상이 부족해 난감한 적도, 주제를 바꾼 적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이 어려움들은 하나씩 상쇄됐다. 구찌가 퍼 사용의 단계적 중단을 알리며 2018년부터 실제 컬렉션에 적용한 뒤, 단순 페이크 퍼 사용을 넘어 소재 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을 보여준 2020년 ‘구찌 오프 더 그리드’ 컬렉션을 선보이던 때다. 비슷한 시기 프라다 그룹, 버버리, 아르마니 등 빅 패션 하우스와 기업들도 퍼프리를 선언했고, 이어서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그룹 케어링은 2021년 9월 전체 브랜드의 모피 사용 금지를 선언했다. 당시 런던과 코펜하겐 패션 위크도 리얼 퍼 사용을 금지하며 PETA 같은 유력 동물권 단체의 캠페인에 응한 리테일업계라는 사례를 남겼다. 이토록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한뜻으로 여론을 만든 건 유례없던 일. 국제 동물권 단체인 퍼 프리 얼라이언스(FF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모피 생산량은 전년도 대비 약 40% 감소했으며, 지난 10년간 전체 생산량은 약 85% 축소됐다는 보고도 있다. 이 변화에 따라 대체 소재 연구도 활발해졌다. 합성 퍼 섬유는 초기의 플라스틱 같은 촉감에서 발전해 최근엔 모다크릴, 리사이클 폴리, 바이오 기반 폴리머를 혼방한 소재로 발전했다. 덕분에 최근 하우스들은 바람결에 자연스럽게 날리는 롱 헤어의 광택과 촉감을 구현할 수 있었다. 티 나는 가짜가 아니라 새로운 질감 실험의 영역으로 옮겨간 셈이다. 신소재 개발에 힘입어 리얼보다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관리가 간단한 페이크 퍼의 장점은 매스 패션과 만나 거대한 유행을 부추겼다. 자라,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는 매 시즌 리사이클 퍼 코트를 대거 출시했고, 유니클로와 COS는 합성 시어링과 플러피 텍스처를 대중화하는 데 한몫했다. 퍼 코트가 스트리트 룩으로 옮겨온 건 자연스러운 수순. ‘윤리’를 럭셔리로 소비하는 시대에 비동물 소재를 사용한 페이크 퍼가 ‘착한 선택’이라는 인식은 수년간 젊은 소비층에게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가짜는 과연 진짜보다 착할까? 혹은 우리는 착해 보이는 소비를 할 뿐일까? ‘리얼 퍼 vs 페이크 퍼’라는 이분법적 담론에서 지난 10년간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윤리적인 듯 보이는 이 선택 뒤엔 숨은 소재 산업의 그림자가 있다. 페이크 퍼는 선함의 상징처럼 소비되지만 석유 기반 합성섬유를 사용해 미세 플라스틱을 발생시키고, 매립 시 분해에 수백 년이 소요된다. 우리가 가볍고 싸게 걸친 따뜻함 뒤편에 어마어마한 환경 비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천연섬유는 윤리적이라는 말도 모순이다. 털 채취 방식에서 동물 학대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캐시미어와 앙고라는 어떤가. 염소 과방목으로 인한 사막화와 토양 파괴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완벽히 선한 털은 없다. 다만 어느 비용을 선택하느냐의 문제 앞에 서 있었을 뿐. 미국 환경운동가 애니 레너드는 “세상에 ‘버린다’는 건 없다. 우리가 무엇이든 버리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어디론가 간다”라고 말했다. 리얼이든 페이크든 우리가 덮는 부드러움엔 늘 누군가의 고통과 지구의 비용이 들어 있다. 페이크 퍼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페이크 퍼를 입으며 ‘꽤나 괜찮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때때로 자부한다. 페이크 퍼는 분명 중요한 전진이다. 퍼프리 선언은 패션사에 길이 남을 윤리적 진보다. 다만 이제는 그다음을 고민해야 할 때다.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2001년 론칭 후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동물 가죽 사용을 자제한 스텔라 맥카트니는 버섯 균사체를 기반으로 만든 마일로(Mylo™) 가죽 등 비건 소재 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룰루레몬과 아디다스도 비동물성이자 비석유성, 생분해성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비플라스틱 윤리 섬유’라 평가되는 이 마일로를 사용한 실험 모델을 공개한 바 있다. 동물 단백질을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으로 합성해 분자 구조부터 모피와 거의 동일한 인공 털인 랩그로운 퓨로이드(Furoid™) 섬유도 최근 개발이 한창이다. 폐어망과 산업용 나일론 폐기물을 재생한 에코닐(Econyl®) 섬유는 2019년부터 프라다의 모든 리나일론 컬렉션에 사용되고 있다. 이 에코닐은 합성 퍼의 바탕 섬유로 쓰일 수 있어 친환경 페이크 퍼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존의 플라스틱 기반 섬유에서 벗어난 식물 기반 퍼인 바이오플러프 소재는 가장 유력한 대체 퍼 후보로 평가되고 있다. 누군가는 버섯으로, 누군가는 폐어망으로 털을 만든다. 많은 브랜드가 시간과 자원을 쏟아 소재 생태계를 바꾸려는 시도에 뛰어들었고, 바이오와 리사이클 섬유는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이 됐다. 패션은 더 이상 진짜냐 가짜냐만을 묻지 않는다. 어떻게 만드는가만큼 어떻게 버리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연결돼 있는가도 묻는다. 결국 이 흐름에 응하는 소비자들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유행으로만 입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사이클적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윤리, 환경 그리고 욕망이라는 3개의 축을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털 하나를 어깨에 올리려는 건데, 그 어깨가 참 무겁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성숙해져야 한다. 패션은 다시 묻는다. 따뜻함의 대가는 누구의 것인지, 다음 세대도 따뜻할 수 있을지. 쇼핑은 즐겁다. 페이크 퍼는 나쁘지 않다. 우리는 예쁜 옷을 걸치고 즐길 권리가 있다. 다만 새해 쇼핑 리스트 한편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남긴 말 한 줄을 써보는 건 어떨까? “옷은 너무 싸게 팔리고 있다. 우리는 덜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어야 한다(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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