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산하 증권사들의 올해 경영 전략에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들 신년사에 하나 같이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무브'(Money Move)를 강조하는 내용이 실리면서 증권사 대표들의 역할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올해 증권사 대표들이 그룹 차원의 전략 실행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요구받은 만큼 성과에 따라 그룹 내 지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금융지주 경영 키워드 'AI' '모험자본'…머니무브 대세론에 존재감 커진 증권사 CEO들
2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하나 같이 금융시장 패러다임 변화와 머니무브(자금대이동)를 강조했다.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대출 규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등의 여파로 증시에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높아 은행의 수신 자본을 바탕으로 한 예대 마진 중심의 수익 구조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내비쳤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신년사에서 "금융산업은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머니무브로 흔들리는 이익 기반에 대응하기 종합적인 자산·부채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신년사에서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상품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머니무브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산관리 역량 확보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산적 금융을 확대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역시 "새로운 금융 생태계가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며 "새로 인수한 증권사와 보험사를 중심으로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융그룹 핵심 계열사인 은행의 수신 잔액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권 개인·개인사업자 정기 예·적금 중도 해지 현황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중도해지 계좌수가 11월 크게 증가했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의 지난해 11월 정기예금 해지금액은 각각 1조8290억원, 2조2783억원 등으로 1~9월 평균에 비해 63%, 43%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각각 38%, 57% 늘었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지주 회장들이 직접 자본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각 그룹 내 증권 계열사의 전략적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은행의 수익 구조 위기에 따른 실적 공백을 증권사에 의존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덕분에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CEO들의 신년사에도 유례없는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 증권사의 자본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 전략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년사에는 경영 전략 실행의 우선순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다"며 "시장과 정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 자본시장 역할 강화, 신사업 추진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기업의 경영 기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4대 금융지주 증권 계열사 중 연임 여부가 불투명한 우리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의 CEO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담긴 신년사를 발표한 상태다. 올해 새롭게 취임한 강진두 KB증권 대표(IB부문)와 이홍구 공동대표(WM부문)는 이날 신년사에서 올해를 '인공지능(AI) 실제화의 원년'으로 선언하며 AI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두 대표는 "업계 최고 수준의 AI 기반 초개인화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재정의하겠다"며 "AI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현업 주도형 실행을 통해 AI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KB증권의 AI 의존도는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AI 솔루션을 통해 개인 투자자를 유치하면 서비스 사용료 등 직접적인 수익뿐만 아니라 고객 자산 증가에 따른 위탁매매 수수료 확대 효과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장은 "올해를 AI 실제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선언은 장기적으로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AI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AI 기반 서비스로 유입된 개인 투자자의 자금을 다시 ETF,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재투자함으로써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와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공통적으로 발행어음을 활용한 모험자본 투자 확대를 통해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강 대표는 "올해는 부분적 개선이 아닌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며 "발행어음을 기반으로 생산적 금융을 확대해 혁신기업의 성장과 미래 산업 생태계 구축을 지원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 대표는 "올해 우리는 발행어음이라는 새로운 기회의 도약대에 서 있다"며 "기업에게는 성장을 위한 모험자본을 과감히 공급하고 투자자에게는 성장의 과실을 투명하게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나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의 신년사의 내용은 장기적인 성장 전략과 시장 점유율 확대에 방점을 둔 경영 전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며 "모험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주도권 확보가 두 기업의 경영 전략의 핵심 방향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증권업계에서 발행어음 도입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정부의 정책 변화 때문이다"며 "이재명정부 들어 금융시장에서 기술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고 혁신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생산적 금융 정책이 본격 추진되면서 증권사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 조달과 운용이 성장과 산업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두 회사는 발행어음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그룹 내 자본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고 장기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며 "두 회사 모두 지주사 차원에서 강조한 정책을 직접 수행한다는 점에서 증권사 대표들의 경영 성과 역시 그룹 전체 수익성으로 직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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