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지름 3.7cm의 소형 청동 거울 한 점이 고려시대 공예와 사상사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준다. '귀를 씻는 허유' 이야기가 그려진 이 거울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동합금 경으로, 지식인 사회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유물로 평가된다.
이 거울은 원형의 외곽을 8엽의 꽃잎 모양으로 파낸 뒤, 내부에 산수와 인물 장면을 양각으로 배치한 고려 청동경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른다. 섬세한 조형 감각과 안정된 화면 구성은 고려 금속공예 기술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장식성과 상징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울 뒷면에 표현된 장면은 중국 고대 요임금 시대의 고사인 ‘기산영수(箕山潁水)’에서 가져왔다. 기산에 은거하던 허유가 요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귀를 영수의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권력과 명성을 멀리하고 도덕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은자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고사로 잘 알려져 있다.
화면의 왼편에는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 허유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위는 외형적으로는 정적이지만, 정치 권력과 세속적 명예를 단호히 거부하는 내적 결단을 담고 있다. 물과 숲으로 구성된 배경은 자연 속에서 도를 지키는 은자의 삶을 강조한다.
맞은편에는 망아지를 끌고 등장하는 소부가 표현돼 있다. 소부는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은자로서 명성을 얻은 것조차 도에 어긋난다고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허유가 씻어낸 물조차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다며 영수의 상류로 올라간다. 두 인물의 대비는 절개와 지조를 둘러싼 깊이를 한층 더 확장한다.
이 장면은 도덕적 기준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허유와 소부는 모두 권력을 거부했지만, 세속과 거리를 두는 방식과 강도는 다르다. 고려의 장인은 물의 흐름과 인물의 위치를 통해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고사 장면이 거울이라는 생활용품에 새겨졌다는 사실이다. 거울은 일상적으로 얼굴을 비추는 도구이자 자기 인식의 매개체다. 그 뒷면에 은자의 절개를 상징하는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외형을 단장하는 행위와 내면의 태도를 함께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사회였지만, 유교적 윤리와 도교적 은일 사상 역시 지식인층 전반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청동경에 담긴 기산영수 고사는 그러한 사상적 환경을 잘 보여준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물러난 은자의 모습은 불교적 출세간 사유와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유교적 정치 질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내포한다.
공예사적으로도 이 거울은 드문 사례에 속한다. 고려 청동경 다수는 기하문이나 식물문, 상서로운 동물 문양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이처럼 분명한 서사를 지닌 고사를 화면 전체에 담아낸 예는 많지 않다. 이는 고려 공예가 장식의 차원을 넘어 사상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작품은 고려가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이 모방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고사를 차용했지만, 이를 고려인의 일상적 물건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망 속에 재배치했다. 왕조 국가의 체제 안에서도 권력과 명성에 대한 경계의식이 문화적으로 공유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은 크기의 거울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권력의 언어를 씻어내고 자연 속에서 도를 지키려는 은자의 태도는 고려 사회가 이상으로 삼았던 정신적 기준을 상징한다. 청동이라는 단단한 물질 위에 새겨진 절개의 서사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의미를 유지해 왔다.
'귀를 씻는 허유' 이야기가 그려진 이 고려 청동경은 당시 사회의 사상과 윤리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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