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조선 경기 호황과 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EU) 등의 환경 규제 강화로 선박엔진이 K-조선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엔진사업부와 HD현대마린엔진, 한화엔진 등 3사는 국제 사회의 환경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이중연료(DF) 엔진의 수요가 급증하는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독보적인 기술력, 품질 등을 더하며 최근 수주잔고와 실적이 모두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3사는 지난해 전 세계 조선 시장의 신조선 발주량이 37% 감소하는 시장 환경의 변화에 맞닥뜨렸다. 새로 건조될 선박의 수요 감소는 탑재될 엔진의 판매량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에 작년 내내 지속된 신조선 발주 감소 현상은 3사의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의 선박엔진 사업은 그룹 내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형 엔진은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가, 중소형 엔진은 그룹 계열사 HD현대마린엔진이 각각 담당하며 두 회사 모두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HD현대마린엔진은 엔진 부품 사업도 병행하며 다양한 라인업 구축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현재 HD현대의 선박엔진 사업 수주잔고는 1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HD현대마린엔진의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수주잔고는 1조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성장했다. 같은 기간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 수주잔고도 7067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10% 늘었다. 조선 슈퍼 싸이클에 진입하면서 선박엔진 수주도 오름세를 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사의 실적도 순항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2025년 3분기 엔진사업부 매출은 1조603억원, 영업이익은 220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9%, 122.6% 증가한 수치다. 납품 물량 확대와 이중연료 추진 엔진의 비중 증가가 수익성 개선을 견인했다.
평균판매단가(ASP)도 높아지며 영업이익률은 20.8%로 상승했다. 이는 HD현대중공업 조선사업 부문의 영업이익률 13%와 해양플랜트 부문(0.2%)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엔진사업이 HD현대중공업의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같은 기간 HD현대마린엔진의 매출은 1091억원, 영업이익은 2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 130.7% 증가했다. 주력인 엔진사업만 놓고 보면 매출 865억원, 영업이익 148억원으로 각각 34.7%, 179.2% 상승했다.
작년 2분기 대비 엔진 인도량, 2024년 수주한 물량의 매출 비중 증가에 따른 제품 믹스 개선 및 ASP 상승이 엔진사업의 호실적을 이끌었다.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효과도 영업이익 급증에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엔진은 ▲수익성 강화 ▲원가율 감소 ▲거래처 다변화 등의 체질 개선 노력에 힘입어 신규 수주 증가와 영업이익률 개선 효과가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화엔진의 신규 수주 규모는 14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했다. 전체 신규 수주에서 수익성이 높은 이중연료 엔진의 비중은 88%에 달한다. 현재 한화엔진의 수주잔고는 3조8068억원으로 3년치 정도의 두둑한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같은 기간 한화엔진의 매출은 29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66억원으로 74.2% 상승했다. 이는 단순한 환율 효과나 일회성 요인이 아닌 고부가가치 프로젝트의 본격 인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박 엔진도 전선(全船)과 마찬가지로 수주 후 인도(납품) 시점에 매출이 반영되는데 작년 3분기에는 2023년 수주한 이중연료 엔진 등 고마진 제품의 납품이 집중됐다. 이로써 한화엔진의 영업이익률은 ▲2024년 3분기 5.2% ▲2024년 4분기 5.6% ▲2025년 1분기 7.0% ▲2025년 2분기 8.7% ▲2025년 3분기 8.9%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익성 강화를 위해 한화엔진은 원가율을 낮추는데 집중해 왔다. 그 결과 2024년 3분기 91%였던 원가율을 작년 3분기 86.6%까지 절감하는데 성공했다. 한화엔진 관계자는 “원가율 감소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설계 표준화·공정 자동화·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맞물린 결과”라고 밝혔다.
한화엔진의 최대 강점은 다양한 고객사다. 수주잔고 기준으로 중국조선소 47%, 한화 계열 27%, 삼성중공업 26%로 구성돼 있다. 고객사 다변화를 통해 향후 경기 변동에도 안정적인 실적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다만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의 발주 잔량 증가와 이로 인한 선박 공급 과잉, 지난해 연중 계속된 신조선 발주 감소는 올해 3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11월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은 총 1627척으로 전년(2994척) 대비 45.7% 감소했다.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715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가 신조 발주됐는데 지난해에는 37% 줄어든 4499만CGT에 그쳤다.
올해 신조선 발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해운시황 역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작년 말 벌크선 중 가장 큰 선형인 18만DWT(재화중량톤수)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을 제외하고 올해 거의 모든 선종에서 선박의 공급 과잉, 관세 여파 등으로 인해 운임이 계속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에 HD현대는 현재 운항 중인 노후 선박의 친환경 엔진 교체 수요를 타깃으로 수익성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IMO에서는 선박의 온실가스 집약도(GFI)에 따라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선사에 인센티브를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내는 '해운 탄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비록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압박과 반대로 IMO의 해운 탄소세 채택은 1년 연기됐지만 글로벌 선사들은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버린 상황에서 기존선(노후선)의 엔진을 친환경 엔진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HD현대마린엔진은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이중연료 엔진을 생산 중이다. 이중연료 엔진은 기존 벙커C유뿐 아니라 친환경 연료인 LNG나 LPG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이다.
HD현대중공업도 메탄올 이중연료 엔진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암모니아와 수소 이중연료 엔진 등 차세대 친환경 엔진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HD현대는 2027년까지 대형 선박엔진 부문에서 친환경 제품 생산 비중을 85%, 중소형 부문은 6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화엔진도 친환경 제품 개발 및 기술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작년 8월 LNG운반선가변압축기(VCR) 적용 엔진 첫 출하와 9월 한국선급으로부터 암모니아운반선 적용 암모니아 연료공급 시스템(AFSS) 개념승인(AIP) 획득 등 해운 탈탄소 전환에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2890여억원을 들여 노르웨이의 전기추진·전력 자동화 시스템 전문기업 SEAM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한화엔진은 기존 내연기관 엔진생산 역량에 SEAM의 전기추진 시스템 사업을 더해 선박 규모와 운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대형 선박은 이중연료 엔진 솔루션을, 중소형 선박에는 전기추진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하는 라인업을 구축함으로써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통합 추진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SEAM의 유럽 시장 내 입지를 기반으로 유럽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신조 및 애프터 마켓(AM) 사업의 저변 확대도 추진키로 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작년 10월 IMO의 탄소세 도입 추진이 미국의 반대로 1년 유예되면서 친환경 선박 신조 발주가 다소 연기될 수 있는 변수가 생겼다”며 “HD현대가 기존 운항선의 친환경 엔진 교체 수요를 올해 신규 일감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고 한화엔진도 전기추진·하이브리드 시스템 선박 시장 진입이란 사업 구조 다변화를 추진하는 등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3사가 기존 선박엔진 시장에서의 마켓 리더 위치를 올해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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