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은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국내 최초 원화 특별전 ‘터너: 인 라이트 앤 셰이드(Turner: In Light and Shade, 빛과 그림자)’를 오는 5월 2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휘트워스 미술관(The Whitworth)과 공동 기획됐으며, 주한 영국대사관이 후원에 참여했다. 19세기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터너의 예술 세계를 ‘빛과 그림자’라는 핵심 개념으로 조망하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그의 풍경 판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터너는 빛과 색채, 대기의 변화에 대한 혁신적인 표현으로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다. 그의 이름을 딴 ‘터너상’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2020년에는 터너의 초상과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가 영국 20파운드 지폐 뒷면에 등장할 만큼 영국 문화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는 판화 71점을 중심으로 수채화 11점, 유화 1점, 기타 자료 3점 등 총 86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특히 터너가 직접 기획한 풍경 판화 연작 ‘리베르 스투디오룸(Liber Studiorum)’ 전 작품 71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의 서’라는 뜻을 지닌 이 연작은 1807년부터 1819년까지 14차례에 걸쳐 출판된 작품군으로, 풍경을 선과 명암, 여백의 관계로 분석하고 재구성한 터너의 실험정신이 집약돼 있다. 이 연작 전편이 한 공간에서 공개되는 것은 1922년 이후 100여 년 만이다.
터너는 풍경화가 비주류로 여겨지던 19세기 영국에서 회화뿐 아니라 판화를 통해 풍경 예술의 지평을 확장한 작가로 평가된다. ‘리베르 스투디오룸’의 71점 가운데 완성된 회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19점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판화를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인식한 그의 실험적 시도를 보여준다. 그는 신세대 메조틴트 판화가들과 협업하거나 직접 판을 새기며, 회화의 색채 언어를 선과 명암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판화가이자 출판인으로서의 터너’에서는 풍경 판화를 체계화하고 교육적 목적까지 염두에 두었던 그의 기획력을 조명한다. ‘터너와 함께한 판화가들’ 섹션은 토머스 고프 럽턴 등 동시대 판화가들과의 협업 과정을 통해 터너가 판화 제작을 얼마나 면밀히 감독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리베르 스투디오룸의 재구상’에서는 휘트워스 미술관 소장 수채화와 유화를 판화와 나란히 배치해, 매체 간의 창조적 순환과 변주를 살핀다.
박지향 우양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는 터너가 판화를 단순한 복제 수단이 아닌 주류 예술로 정착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치열한 실험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터너 풍경화의 색채와 대기 표현이 판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선과 명암, 여백으로 변주되는지 주목해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 비평가 존 러스킨이 “터너는 색보다 빛과 명암을 먼저 생각한다”고 평했듯, 이번 전시는 터너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빛에 대한 사유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재개관 이후 국제 협력을 확대해 온 우양미술관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휘트워스 미술관은 런던 외 지역에서 가장 방대한 터너 수채화 컬렉션을 보유한 기관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주요 소장품을 한국에 대여했다. 특히 휘트워스 미술관의 한국인 첫 유럽 미술관 수장인 이숙경 관장이 개막 전후 방한해 전시와 국제 협력의 의미를 직접 전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전시 동안 우양미술관은 판화 제작 체험, 빛과 명암을 활용한 현대 풍경 작업, 미니 갤러리 제작, 걷기형 미술사 교육 등 총 5개의 상설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설 당일은 휴관한다. 입장은 유료다.
우양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터너를 단순한 역사적 거장이 아닌, 매체와 관습을 넘나든 실험적 예술가로 재조명하는 자리”라며 “빛과 명암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통해 동시대 미술을 다시 사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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