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팔리지 않는 그림이란 어떤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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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칼럼] 팔리지 않는 그림이란 어떤 그림일까

문화매거진 2026-01-02 12:34:55 신고

▲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이미지, CHAT GPT 사용
▲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이미지, CHAT GPT 사용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전속 작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정보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갤러리 전속 작가라는 제도 역시 내게 마찬가지다. 구조와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감각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다. 2026년부터는 아트페어를 포함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갤러리에 프로필을 보냈고, 그만큼 많은 거절을 경험했다. 거절의 이유는 대부분 익숙한 것이었다. 시장성, 컬렉션 방향 등. 그러던 중, 한 갤러리에 프로필을 보내기 전 사전 컨택을 했고, 그곳에서 들은 거절의 이유는 이전과는 결이 달랐다.

“강산님 작품이 다른 작품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며칠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불쾌하다기보다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던 관점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내 작품이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라, ‘공존의 문제’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더 낯설게 다가왔다.

2025년 12월 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아트쇼’를 관람했다. 같은 공간에서 열린 일러스트 페어에 참여한 작가들의 게시물을 보고 응원의 의미로 방문한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작업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호텔 아트페어는 몇 차례 경험했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아트페어는 처음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이어졌다.

각 부스를 차분히 둘러보며 그날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작품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표현의 의미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작품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을 때,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밝고 부드러운 색감, 친근한 이미지로 향했다. 파스텔 톤, 사랑스러운 서사, 부담 없이 소비 가능한 이미지들.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 그것이 현재 아트페어 현장이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그 사이에 그로테스크하고 불편한 감각을 전면에 드러내는 내 작업이 놓인다면, 그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흔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 입장에서 그것은 ‘작품의 우열’이 아니라 ‘조율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제야 그 말이 현실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한 작가는 유쾌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 활력처럼 보였다. 그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자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트쇼에 걸린 그림들을 다 보고 나면, 본인 그림에서 어디를 조정해야 할지 보일 거예요. 아주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의 의미 역시 그 공간을 직접 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 명확해졌다. 방향을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의 선택만이 남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과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 예술가는 언제나 이 두 축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한다.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면 지속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렇다고 내키지 않는 방향에 스스로를 완전히 맞추는 일 또한 쉬운 선택은 아니다. 이는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사동 거리를 걸을 때도, 이번 아트쇼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재능 있는 사람은 너무 많고,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오히려 내 작업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았다. 예술을 둘러싼 제도와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작가의 가능성을 규정하고, 동시에 한계 짓는지를 보다 명확히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트쇼와 아트페어는 분명 작가에게 노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지만, 동시에 일정한 시각적 안전성과 소비 가능성을 요구하는 시장의 논리 위에 놓여 있다. 그 안에서 작품은 개별적 세계라기보다 조화와 균형의 일부로 기능한다.

그러한 구조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질서가 모든 작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떤 작업은 그 틀 안에서 빛을 발하고, 어떤 작업은 필연적으로 배제된다. 이는 작가의 역량이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성격에 가깝다.

그래서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보다 분명해졌다.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방향을 조정하는 일과, 자신의 작업 언어를 유지한 채 다른 속도로 걷는 일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그 선택은 성공이나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언제나 시장과 나란히 존재해 왔지만, 결코 동일한 논리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모든 작업이 환대받을 필요는 없고, 모든 길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도 없다. 

이번 아트쇼 관람은 내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은 누군가의 기준에 의해 조정되는 좌표가 아니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밀도와 속도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이 글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다만 하나의 경험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인지가 보다 분명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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