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한국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미 실전 운용 중인 FA-50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경험이 있었기에 성능 개량과 추가 도입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 FA-50 (사진 KAI 제공)
최근 체결된 FA-50 성능 개량 계약은 단순한 업그레이드 사업이 아니라, 필리핀 공군의 전력 운용 철학과 한국 방산의 수출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먼저 계약의 핵심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필리핀은 2015년 도입해 운용 중인 11대의 FA-50에 대해 약 900억 원대의 성능 개량을 추진한다.
정밀유도무장 운용 능력 강화, 항속거리 및 지속 작전 능력 향상이 주요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체를 완전히 교체하는 대신, 이미 검증된 플랫폼의 생명주기를 늘리는 선택이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한 카드다.
이와 별도로 진행 중인 12대 추가 도입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필리핀은 중국과의 해양 갈등, 다도해 환경이라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고가의 다목적 전투기를 단기간에 대량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즉시 전력화가 가능하고, 조종사와 정비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FA-50을 늘리는 쪽이 현실적인 해법이 됐다. 과거 추락 사고 이후에도 추가 계약이 성사됐다는 점은, 기체 신뢰성과 후속 지원에 대한 평가가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 즉 KAI의 역할은 분명하다. 단순 판매가 아니라 성능 개량, 후속 군수지원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은 동남아 방산 시장에서 한국이 확보한 경쟁력의 핵심이다.
값싼 무기나 최첨단 무기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수준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메시지가 통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필리핀이 중장기적으로 도입을 검토하는 다목적 전투기 사업에서 한국의 KF-21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하 1.8 이상의 성능, 쌍발 엔진이 주는 안전성과 항속 여유, 섬이 많은 작전 환경과의 궁합, 그리고 상대적으로 빠른 납기 가능성은 필리핀에게 매력적인 조건이다.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F-16V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KF-21은 아직 양산 초기 단계에 있고, 실전 운용국이 없는 기체다. 필리핀으로서는 FA-50이라는 ‘검증된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며 위험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성능 개량과 추가 도입으로 신뢰를 쌓고, 이후 일부 물량을 KF-21로 전환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계약을 과장된 성공담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동시에, 단순한 한 건의 수출로 축소해서도 안 된다. 필리핀의 선택은 한국 방산이 저가와 고가 사이의 회색지대를 정확히 파고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FA-50은 입문기였고, KF-21은 그 다음 페이지다. 그 페이지가 실제로 넘어갈지는, 향후 몇 년간의 성능 검증과 후속 지원, 그리고 한국이 얼마나 꾸준히 신뢰를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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