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 ⑭』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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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 ⑭』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6-01-01 23:08:01 신고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한남동의 밤, 소맥(燒麥)의 제단

고려의 한남동 관저의 밤은 언제나 코끝을 찌르는 독한 소주 냄새와 톡 쏘는 맥주 거품의 향으로 시작되었다. 대윤에게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려의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잃고 정사를 방기한 채 매달렸던 '망각의 약'이었으며, 동시에 검찰 조직에서 형(兄)과 아우(弟)를 가르던 '위계의 성수'였다.  

"자, 한 잔씩들 돌려! 군인의 생일에는 술이 빠지면 안 되는 법이야!"

대윤의 외침에 국군 수뇌부들은 마지못해 빈 잔을 내밀었다. 대윤은 능숙한 솜씨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소폭'을 말아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는 과거 토론회에서 목격되었던 '임금 왕(王)' 자의 흔적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 보였다. 한 번에 열 잔에서 스무 잔씩 소폭을 돌리는 그의 '폭탄주 정치'는 이미 관료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장관들은 대통령을 알현하기 전, 기밀 서류 대신 숙취해소제를 먼저 챙기는 기이한 풍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술자리는 단순한 친목의 장이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된 자리에 주술적 광기가 스며드는 의식이었다. 대윤은 취기가 오를수록 격앙된 어조로 '반국가 세력'에 대한 처단을 외쳤다.

 "훈동한이고 뭐고, 정적들을 싹 잡아오면 내 손으로 총질이라도 하겠다"는 그의 폭언은, 훗날 12.3 계엄이라는 발작적 참극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였다. 

황후의 흑마술: 영성적 타락의 극치

대윤이 술기운에 칼을 휘두르는 '장님 무사'라면, 그 칼날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은 안방의 주인 황훈 희건김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이라 칭하며, 책을 읽고 삶의 본질을 논하는 우아한 지식인으로 포장했으나, 그 본질은 타인을 저주하고 개인의 욕망을 투사하는 흑마술적 영성에 닿아 있었다. 

"균 선생,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참 많네요. 그렇지 않나요?"

희건김이 지리산 도사라 불리는 균태명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그녀의 비틀린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녀에게 영성이란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염승(厭勝)'의 수단이었다. 균태명은 그녀를 가리켜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그러나 앉아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주술사'라 평했다. 장님의 어깨 위에 올라타 주술을 부리는 이 기괴한 부부의 모습은 고려 말 신돈의 권력에 기댔던 공민왕의 변주였다.  

그녀의 주술은 국정 곳곳에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풍수지리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청와대 입성을 거부하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관저 부지를 선정할 때 공천과 같은 무속인이 경호처장과 함께 현장을 시찰했다는 의혹은, 이 나라의 중대사가 합리적 행정이 아닌 무속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어사대(御史臺)의 붕괴와 명품의 제물

고려시대 백관을 규찰하고 국왕의 잘못을 간쟁하던 어사대(御史臺)의 정신은 현대의 검찰에 계승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대윤의 후예들은 국왕의 비리를 파헤치기는커녕, 황후 희건김의 치맛자락 뒤에 숨어 그녀를 비호하는 '가구소(街衢所)'의 간수로 전락했다.  

황후 희건김의 코바코컨텐츠 사무실은 주술적 조언과 세속적 뇌물이 교차하는 기묘한 제단이었다. 영재최 목사가 전달한 300만 원 상당의 명품 가방은 그녀의 눈에는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권위를 인정받는 제물과도 같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영 목사의 일갈을 비웃듯, 명품 가방 수수를 '권력의 사유화'가 아닌 '영성적 소통'의 일환으로 치환해버렸다.  

이 시기 대윤은 폭우로 강남이 침수되던 밤에도 서초동 자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전화로 국정을 지휘했다. 국민들은 이를 '폰트롤타워'라 조롱했으나, 주술의 성채에 갇힌 그들에게 국민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안방에서 들려오는 주술적 예언과 술잔의 거품만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12.3 계엄: 발작하는 광령(狂令)

서사의 클라이맥스는 12월 3일, 알코올과 주술이 빚어낸 최악의 발작인 비상계엄 선포였다. 계엄 선포 직전까지 대윤은 참모들과 소맥 수십 잔을 비우며 극도로 격앙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소멸한다!"

 황후 희건김의 불안 섞인 주술적 위기론이 대윤의 뇌를 자극했을 때, 그는 헌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비상계엄이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이는 이성적인 통치자의 결단이 아니라, 술 취한 무사가 환각 속에서 휘두르는 광기 어린 칼춤이었다. 국회의 담장을 넘는 군대와 이를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대치는, 수백 년 전 고려를 무너뜨렸던 권문세족의 탐욕과 이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역사적 평행이론을 완성시켰다. 

무너지는 주술의 성채

 계엄이 단 몇 시간 만에 해제되고 탄핵의 파도가 한남동 관저를 덮쳤을 때, 주술의 성채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관저 주변을 에워싼 차벽과 지지자들의 울부짖음도 다가오는 역사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균태명의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자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비유는 이 정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비석이 되었다. 대윤은 관저 입주 886일 만에 사법 집행의 대상이 되어 그곳을 떠나야 했다. 공민왕이 자제위의 칼날에 허무하게 쓰러졌듯, 대윤 또한 자신이 그토록 신뢰했던 '법치'라는 이름의 칼날 앞에 서게 된 것이다. 

 황후 희건김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모든 파국은 '영적 시험'일 뿐이었다. 그러나 주술로 얻은 권력은 주술이 깨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만이 그녀의 남겨진 옥살이를 대변할 뿐이었다.

[사서(史書)의 주석] 본 서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윤'과 '희건김'의 통치를 고려 공민왕대의 비극적 말로에 빗대어 재구성한 것이다. 대윤의 음주벽은 국정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했고 , 황후 희건김의 영성적 타락은 합리적 이성을 주술의 영역으로 퇴행시켰다. 이들의 몰락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권력의 사유화'와 '비선 정치'의 전형적인 결말을 보여준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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