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철학자, 초월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2차 세계대전 때 가족과 친구를 잃고 그 자신 역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포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레비나스는 이 거대한 폭력의 근원을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찾았다. 타자의 차이를 소거하고 흡수해 주체성을 형성한 서양 철학의 전통이 상대를 말살하는 전체주의, 전쟁과 닮은 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레비나스는 오랜 기간 자신만의 독창적 철학을 전개했다. 『초월과 인식 가능성』은 말년의 레비나스가 신학의 언어를 더해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문제를 다시금 급진화한 책이다. 초점은 추상적 논의보다 구체적 행위에 맞춰져 있다. 하늘의 성스러운 윤리를 어떻게 이 땅에서 실현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다. 그간 레비나스의 여러 책을 번역해온 김동규 역자에게 레비나스 사상의 맥락과 이 책의 의의를 물었다.
먼저 레비나스가 어떤 철학자인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보통 레비나스를 네 문화의 철학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1906년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레비나스의 모어는 러시아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러시아 문화와 문학에 깊이 침잠할 수 있었지요. 또한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사상에 정통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에 유학하여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하고, 프랑스 철학의 자장에서 사유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보면 그는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이와 더불어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재학 시절 직접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건너가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유를 몸소 익혔다는 점에서 독일 문화와 사상의 영향도 크게 입었지요. 저는 이 네 문화의 영향이 그가 겪은 전쟁의 참상과 결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이후 그는 언급한 네 문화를 사유의 원천으로 삼아 전쟁과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윤리적 형이상학을 개진합니다. 결국 레비나스는 철학자로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전통을 수렴한 현상학자이자 러시아 문학에 조예가 깊은 유대인 사상가이면서, 이러한 사유의 원천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이 겪은 비극과 시련에 맞서 윤리와 평화의 사상을 구축하려고 한 인물이라 할 것입니다. 그의 주저인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는 1974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에 달린 헌사를 보면 그가 어떤 삶과 사상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치가 학살한 600만 명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이들을 기억하며. 그리고 모든 종파와 민족의 수많은 사람들, 반유대주의와 같은 방식의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며." 이 점에서 그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홀로코스트 이후의 철학자"일지도 모릅니다.
레비나스 사상의 맥락에서, 『초월과 인식 가능성』을 어떻게 독해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은 말년의 원숙한 그의 사유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반부 강연 원고에는 그가 대항하고자 했던 서구 철학 전통에 대한 그의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서양 철학의 핵심 주제인 존재는 동일자 또는 전체, 일자, 통일성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타자에 접근하는 방식은 '앎' 또는 '인식'입니다. 이 경우 타자는 동일자에게 헤아림의 대상이 될 뿐 그 자체로 고귀한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한 다음, 이런 서구 철학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무한과 타인의 얼굴의 도래를 위한 새로운 현상학 또는 신학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이 점에서 『초월과 인식 가능성』은 레비나스의 핵심 의도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자 개관 역할을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이 사유에서 신학의 자리를 노골적으로 갱신하고자 한다는 점을 눈여겨보면 더 흥미로울 것입니다.
199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레비나스 도서인 『시간과 타자』와는 어떻게 연계해 읽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시간과 타자』는 1940년대 후반 작품으로 그의 주저인 1961년작 『전체성과 무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이 시기 레비나스는 존재의 무게를 덜어낸 자아로서의 존재자의 홀로서기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갱신되는 시간과 미래를 기술하고, 에로스나 부성, 번식성과 같은 개념을 통해 타자성의 의미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에 비해 본서는 원숙기에 이른 레비나스를 통해 타자성과 무한인 타자를 향한 초월의 의미가 훨씬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진술됩니다. 즉, 사유의 밑그림에 짙은 색채가 더해진 것이지요. 이 변화에 주목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함께 읽으면 좋을 레비나스의 다른 저작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언급하신 『시간과 타자』, 그리고 주저인 『전체성과 무한』과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를 같이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이 두 권의 주저가 어려운 분들에게 『초월과 인식 가능성』은 훌륭한 개관을 제공합니다. 더 나아가 두 권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신학 또는 종교에 대한 사유가 나온다는 점은 이색적이면서도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레비나스의 다른 저작과 달리 신학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레비나스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원래 레비나스는 '신학'이란 용어를 사유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신학은 기본적으로 존재론과 친숙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오히려 '다시 묶는다'는 뜻의 라틴어 religare에서 유래한 '종교'라는 말을 사유하는 데 더 익숙했습니다. 그가 신학자이기를 한사코 거부한 것은 맞지만, 신학에 늘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 유대인 사상가는 유대교 신학의 체계를 세우거나 자기만의 신학을 제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지만, 윤리를 통해 신학을 갱신하는 데는 늘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신학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본서에도 언급하듯이 하늘의 지혜, 곧 신의 말씀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도덕적으로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진정한 의미라고까지 말하지요. 이는 철학을 통해 신학을 갱신하려는 시도일 것이며, 그의 유대교 사상가로서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20세기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철학자입니다. 그의 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지금의 21세기에도 울림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이야말로 레비나스를 다시 읽을 때라고 봅니다. 우리는 인종주의와 전체주의가 소위 '선진국'이라거나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는 곳에서, 그리고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그리고 실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현실 정치는 전쟁에 알리바이를 제공할 뿐 평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오직 나의 권리가 최우선시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장 아침에 상품 배송을 받아야 할 나의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죽지 않고 일해야 할 노동자인 타인의 권리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나의 행복을 위해 외국인이나 이주민, 불법체류자 같은 이방인을 배제하는 것이 옳을까요? 레비나스는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나의 휴머니즘이 아니라 타인의 휴머니즘을 제시합니다. 권리와 인권은 오직 나만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비롯하고, 타인에 대한 책임을 통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우리가 윤리적으로 둔감해지고 있을 때, 레비나스의 저작은 마치 우리의 도덕적 무능함을 일깨우는 예언적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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