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도예의 역사를 이끌어간 신상호 작가의 60여 년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말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최대 규모의 도자 작가 개인전 ‘신상호: 무한변주’에선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 등 경계를 넘나드는 신상호의 전작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 ‘신상호: 무한변주’는 국내 도자의 전통적인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고 새 질서를 세워온 신상호(1947~)의 여정을 상징한다. 5부로 구성된 전시는 도자 90여 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을 다루며 현대사의 흐름 속 사회와 미술의 변화를 마주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는 1960~1990년대 신상호의 도자 세계를 조명한다.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예의 길에 들어선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이천의 도자 장인들과 일본 전시에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상호는 국내 최초로 가스가마를 도입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생활 식기 제작과 화가와의 협업 등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했다. 1973년 국내 첫 개인전을 계기로 선보인 ‘아(我)’ 연작은 초기 정체성 확립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도조의 시대’는 신상호의 도자 조각(陶彫)을 다룬다. 1984년 미국 교환교수 시절,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경험한 그는 조각과 회화 요소가 결합된 조형성을 추구하며 ‘꿈’ 연작을 발표했다. 신상호는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위해 88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국제도예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95년 영국에서 아프리카미술을 경험하고 흙의 원초적 생명력과 힘을 형상화한 ‘아프리카의 꿈’ 연작으로 형태적 언어를 확립했다.
3부 ‘불의 회화’는 2001년 이후 신상호의 건축 도자의 실험을 600여 장의 도자 타일과 건축 아카이브를 통해 조명한다. 그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을 실험하며 대형 외벽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 ‘밀레니엄 타이드’를 시작으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 외벽에 ‘구운 그림’ 도자 타일을 설치했다.
4부 ‘사물과의 대화’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수집과 이를 통한 창작활동을 다룬다. 컬렉터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수집품을 작업장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의 사물들의 수집에서 영감을 받아 ‘부산물’(2014)이나 ‘표면, 그 너머’(2010년대) 등 혼종의 연작을 선보였다.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는 2017년부터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를 조명한다. ‘흙으로 그린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생명수’(2017)와 ‘묵시록’ 연작(2017~)은 흙의 유기적 패턴과 색의 층위가 한데 어우러진다. 도자 회화는 1980년대 도조 작업 이후 이어져 온 ‘조각과 회화의 통합’이란 그의 예술적 탐구가 가닿은 곳이다.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인 ‘흙에서 태어난 상상동물’도 마련돼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흙이라는 물질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한국 현대 도예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3월29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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