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가상자산(디지털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된 스테이블코인 규모가 1년 만에 약 77조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 약세와 환율 급등 국면에서 달러 대체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찾는 수요가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9일 블록체인 온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25일까지 국내 5대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서 거래된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총 177조165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거래량인 100조2838억 원 대비 약 77조 원 늘어난 수치다.
이번 집계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거래가 더욱 가파르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약 87조 원 수준이었으나, 하반기에는 이를 웃도는 약 90조 원의 거래가 이뤄졌다. 연말로 갈수록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달러 자산 선호가 집중된 결과로 해석된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사실상 USDT가 주도했다. 올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USDT 비중은 약 96%에 달했으며, USDC 거래량은 약 5조8900억 원 수준에 그쳤다. 두 자산 모두 달러와 1대1로 연동되는 구조로, 스테이블코인 매수는 사실상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업계는 환율 상승을 거래 급증의 핵심 배경으로 꼽는다. 실제로 26일 오후 기준 달러·원 환율은 1440.90원을 기록했으며, 지난 23일에는 장중 1482원까지 치솟으며 1500원 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조치 이후 다소 진정됐지만, 원화 약세에 대한 경계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원화 가치는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낮아졌다. 지난해 1월 2일 1334.96원이던 달러·원 환율은 같은 해 12월 31일 1502.84원까지 상승하며 1500원을 돌파했다. 강달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 확보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달러인덱스는 전 거래일 대비 7.9포인트 하락한 97.602를 기록했다. 글로벌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는 상대적으로 더 큰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체감 환율 부담은 오히려 커진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의 간편한 접근성도 거래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화를 직접 매수하려면 은행 방문이나 환전 절차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하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달러 자산에 노출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대한 명확성이 확보될 경우 실물자산과 결제 시스템의 온체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범위가 투자 수단을 넘어 결제·금융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전망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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