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글로벌 딜 시장은 ‘기술이 강했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거래의 표면은 기술이었지만, 자본이 실제로 움직인 방향은 전력·에너지·인프라처럼 산업 전반의 비용과 생산능력을 좌우하는 자산이었다.
29일 <뉴스로드>는 시티오브런던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독점 자료를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2025년 1월 1일부터 12월 28일(한국시간)까지 골드만삭스·JP모건체이스·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3대 투자은행이 집행한 거래는 총 7647건, 총 거래가치는 2조0446억7600만 파운드(약 4경원)에 이른다.
섹터별로 보면 기술·미디어·통신(TMT)이 세 회사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골드만삭스 34.41%, JP모건 31.85%, 모건스탠리 33.57%다. 다만 올해 기술 거래는 소비자 플랫폼이나 콘텐츠 중심이 아니었다. 반도체 IP, 데이터 처리 기술, 산업용 소프트웨어처럼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원가 구조를 직접 건드리는 자산이 중심에 섰다. 기술이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비용 항목으로 재분류된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에너지와 인프라다. 골드만삭스의 에너지·인프라 비중은 8.08%였지만, JP모건은 12.28%, 모건스탠리는 16.23%까지 올라섰다. 특히 모건스탠리는 이 부문이 TMT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건 단순한 섹터 선호 변화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 글로벌 물류는 모두 전력 단가와 공급 안정성에 의해 수익성이 갈린다. 전력망과 발전 자산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기술 기업의 마진 구조가 바뀐다. 자본이 에너지·인프라로 이동한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이나 기술 기업을 사기 전에, 기술이 돌아가게 만드는 조건을 먼저 확보하려는 판단이다.
IB별 전략 차이는 숫자로 분명히 갈린다. JP모건은 총 2474건으로 거래 건수는 2위였지만, 총 거래가치는 7386억5600만 파운드(약 1441조3616억원)로 3사 중 1위다. 소수의 초대형 거래를 선별해 시장의 무게중심을 잡았다는 뜻이다.
골드만삭스는 3004건으로 가장 많은 거래를 집행했다. 총 거래가치는 6720억2800만 파운드(약 1311조3484억원)다. 거래의 질보다 흐름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기업공개, 유상증자, 2차 매각까지 파이프라인 전반을 촘촘히 가져갔다.
모건스탠리는 2169건, 거래가치 6339억9200만 파운드(약 1237조1277억원)다. 숫자보다 눈에 띄는 건 에너지·인프라 비중이다. 전체 거래의 16% 이상을 이 부문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산업 구조 변화에 가장 직접적으로 베팅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같은 시장에서도 세 회사의 전략이 갈린 이유는 각 사의 자본 구조, 리스크 관리 방식, 고객 기반이 구조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상업은행 기반의 글로벌 금융그룹이다. 예금 기반의 안정적인 자금 조달 구조를 갖고 있고, 기업금융·대출·결제·외환·파생까지 연결된 밸런스시트 활용 능력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수십억~수백억 달러 규모의 자본 집약적 거래에서도 자기자본 투입과 금융주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다. 대형 인수금융, 초대형 M&A, 국가 단위 거래에서 JP모건이 반복적으로 중심에 서는 이유다. 리스크 관리는 거래 건수보다 거래 단위당 손실 가능성을 통제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객 역시 글로벌 대기업, 국부펀드, 정부·공공기관 비중이 높다.
골드만삭스는 전통적으로 자본 회전율을 중시하는 투자은행이다. 자기자본을 장기간 묶어두기보다는, 인수·상장·유상증자·2차 매각을 빠르게 연결해 수수료와 트레이딩 수익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거래 건수가 가장 많다.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개별 거래의 크기가 아니라, 포지션 노출 기간을 짧게 가져가는 것이다. 고객 포트폴리오는 사모펀드, 성장기업, 기술기업 비중이 높고, ECM·DCM·대체금융까지 파이프라인 전반을 장악하는 구조다. 시장의 흐름을 가장 먼저 읽고, 가장 빠르게 거래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모건스탠리는 상대적으로 실물자산과 장기 구조물에 강점을 가진다. 에너지, 인프라, 부동산, 장기 프로젝트 금융 비중이 높다. 거래 회전율은 낮지만, 한 번 관여하면 거래 기간이 길고 구조가 깊다. 리스크 관리는 단기 가격 변동보다 현금흐름의 지속성과 자산의 구조적 안정성에 맞춰진다. 연기금, 보험사, 장기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핵심 고객이다. 2025년 에너지·인프라 비중이 가장 높게 나온 것도 이 전략의 연장선이다.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JP모건은 “얼마나 큰 거래를 감당할 수 있는가”, 골드만삭스는 “얼마나 많은 거래를 흘려보낼 수 있는가”, 모건스탠리는 “얼마나 오래 현금흐름을 붙잡을 수 있는가”에 각각 최적화돼 있다. 그래서 같은 시장, 같은 기술 붐 속에서도 세 회사의 거래 지도는 다르게 그려졌다. 숫자는 그 전략 차이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금융(FIG)과 헬스케어는 자본 쏠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았다. FIG 비중은 골드만삭스 16.46%, JP모건 14.31%, 모건스탠리 14.17%로 세 회사 모두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헬스케어도 골드만삭스 9.22%, JP모건 9.66%, 모건스탠리 10.02%로 큰 차이 없이 분포했다. 규제 진입장벽이 높고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높은 섹터가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포트폴리오의 하단을 지지한 셈이다.
2025년의 거래 지형은 단선적이지 않다. 기술은 거래의 출발점이었고, 에너지와 인프라는 그 기술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제공했다. 금융과 헬스케어는 경기 변동과 금리 환경 변화 속에서 손실 폭을 제한하는 역할을 맡았다. 성장, 구조, 안정이 동시에 배치된 이 조합이 올해 글로벌 자본이 선택한 거래의 형태였다.
시티오브런던의 한 글로벌 딜 관계자는 <뉴스로드>에 “올해 거래의 본질은 기업 자체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와 생산능력을 누가 쥐느냐에 있었다”며 “전력과 인프라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한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의 숫자는 이미 다음 국면을 가리킨다. 기술 거래는 이어지겠지만, 성패는 그 기술이 의존하는 전력·에너지·인프라 구조에서 갈린다. 자본은 기업 인수보다 먼저 그 기반을 확보했고, 그 위에 다시 한 번 자신들만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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