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 피터팬은 없다[최종수의 기후이야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기후위기 시대에 피터팬은 없다[최종수의 기후이야기]

이데일리 2025-12-29 05:00:00 신고

3줄요약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영국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의 동화 ‘피터팬’에서 주인공 피터팬은 끝내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로 그려진다. 그는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회피한 채 시간이 멈춘 ‘네버랜드’에 머물며 아이로 남는다. 동화에서는 성장의 불편함을 외면하면 영원한 유년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불편함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성장이란 자유를 누리는 일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부담과 책임을 감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 역시 바로 이 지점, ‘성장에 따르는 책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간 외면해 온 기후 청구서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의 한 주택가 전력량계(사진=연합뉴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주로 정부에 요구해 왔다. 반복되는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은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닌 현재의 생존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국민의 안전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의 핵심 과제가 됐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2026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의 필수 과제로 명확히 제시했다.

그러나 대응의 필요성이 선명해질수록 정작 본질적인 질문 하나는 뒤로 밀려났다. 바로 ‘그 전환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단호히 대응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생활의 불편과 경제적 비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요구와 기대는 갈수록 커졌으나 비용 부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논의의 속도는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러한 인식과 현실의 괴리는 이미 정책 곳곳에서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2026년 업무보고에 따르면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보급을 가속화하기 위해 전력망 확충과 계통 안정화 투자가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이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송·배전망 보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산업 부문에는 탄소 감축 설비 투자와 배출 관리 의무가 강화되고 건물과 수송 부문에서도 에너지 효율 기준이 한층 높아진다.

이 모든 조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과 에너지 가격, 또는 재정 지출의 형태로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누려온 비교적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는 화석연료와 원자력 중심의 구조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는 초기 투자비와 관리 비용이 증가한다. 이는 정책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근본적 전환에 수반되는 구조적 비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기후정책은 오랫동안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당위의 언어로 제시됐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비용과 부담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됐다. 그 결과 전기요금이나 에너지 가격 조정이 거론될 때마다 사회적 갈등이 반복됐고 정책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실질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비용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나눌 것인지는 우리 사회가 함께 결정해야 할 숙제다. 정부는 목표를 선언하는 데서 나아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의 구조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국민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국민 역시 기후위기를 요구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따르는 책임을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피터팬은 동화 속에서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그럴 수 없다. 기후위기라는 현실 앞에서 성장을 미루는 태도는 그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길 뿐이다. 이제는 어른의 사회답게 기후위기 대응에 수반되는 비용을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그 부담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