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⑩』삭풍(朔風)의 감옥과 지워진 왕(王)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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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⑩』삭풍(朔風)의 감옥과 지워진 왕(王)의 환영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29 04:5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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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고려의 국운을 뒤흔들었던 1,000일의 광기가 멈춘 뒤, 개경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용산성의 화려했던 등불은 꺼졌고, 그곳의 주인은 이제 바뀌었다. 한때 만인을 호령하던 황제 대윤은 이제 '폐주'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서대문 유배지(감옥)의 좁은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 새겨졌던 붉은 왕(王)자는 주술의 유효기간이 다한 듯 검붉은 멍처럼 변해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대윤은 감옥 안에서도 지독한 환청과 숙취에 시달렸다. 그는 벽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서울법대 가지 않고 육사에 갔다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내가 중령 시절로 돌아가 싹 다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술잔 대신 쇠로 된 식기를 든 그의 손은 수전증으로 인해 멈추지 않고 떨렸다. 그의 뇌는 수천 통의 독주에 절어 이미 통치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폐인의 상태였으나, 그의 입은 여전히 자신을 거부한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특히 최근 특검의 수사 결과로 밝혀진 사실은 대윤에게 지독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12월 3일, 그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자폭 단추를 눌렀던 비상재변의 계획을, 정작 '권력의 공동 운영자'라 불리던 황비 희건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윤은 자신의 치졸한 스캔들을 덮기 위해 황비조차 믿지 못하고 오직 충암파 동문 장수들과 술잔만을 믿고 거사를 모의했다. 황비는 계엄 실패 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대윤에게 극심한 분노를 쏟아냈고, 이는 두 사람의 맹목적인 사랑이 사실은 각자의 권력욕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음을 증명했다.

 대윤의 광기는 그가 가장 신뢰했던 후배, 훈동 대감을 향해 가장 날카롭게 번득였다. 대윤은 감옥 안에서도 훈동 대감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주광(酒狂)에 가까운 적대감을 드러냈다. 실화에 따르면, 대윤은 황제의 자리에 있을 당시 군 수뇌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훈동 대감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부었다고 전해진다.

"훈동이는 빨갱이다! 당장 잡아오라! 내 손으로 총을 쏴 죽여버리겠다!"라고 고함치며 폭음했던 그의 모습은 법치를 수호하려 했던 훈동 대감에게 단순한 정치적 결별을 넘어선 인간적 멸멸의 순간이었다.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며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훈동 대감에게 황제의 이러한 발언은 대윤이라는 사내와 결코 함께 갈 수 없음을 확정 짓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황비 희건 역시 명성왕후의 환상에서 깨어나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술가 '무정'의 예언을 믿으며 경복궁 어좌에 앉아 선글라스를 낀 채 오만을 떨었으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특검의 포위망뿐이었다. 도사 최 씨에게 받은 300만 냥짜리 디올 가방을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웠던 인연"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던 시절은 끝났다. 그녀의 친정인 척족들은 이미 몰락했다. 모친은 요양원에서 구휼 자금을 가로채고 노인들을 학대한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었고, 친오빠는 땅 개발 특혜 의혹으로 구속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문을 말아먹을 여인"이라던 대윤 모친의 예언은 가문을 넘어 나라를 망치고 폐주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재의 대심판정에서 내려진 8대 0 전원 일치 파면 선고는 고려 역사의 필연적인 마침표였다. "피청구인 황제 대윤을 파면한다"는 법관의 선언은 '통치자의 24시간 위기 대응 의무'를 저버리고 술과 여인, 그리고 주술에 빠져 헌정을 파괴한 대가였다.

이제 고려의 조정은 '명재 황제'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현지 상궁과 남국 비서관 같은 인물들은 이제 새로운 권력의 수족이 되어 움직였고, 대윤의 시대는 지독한 숙취처럼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감옥의 창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대윤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은 고려의 정의가 아니라, 술병 속에 담긴 허망한 환영과 자기를 배신한 여인의 치맛자락이었음을. 고려의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한때 '정의로운 검'이라 불리던 사내가 어떻게 사적인 탐닉의 노예가 되어 가장 비참한 폐주로 사라져 갔는지를. 대윤의 1,000일 천하는 그렇게 한 조각 술기운처럼 덧없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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