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사과가 늦었나”가 아니라 “그 사과문에 적힌 사실은 누가, 어떤 절차로 확인했나”입니다.
확인의 주체와 검증 과정이 불명확해지는 순간, 사과는 책임의 언어가 아니라 설득의 장치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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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쿠팡이 내세운 ‘정부 지시’ 프레임을 부인했습니다. 정부가 한 일은 조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조사 과정에서 나온 내용을 문답식으로 확인하는 절차뿐이었으며, 추가 행동을 지시하거나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정해준 적도 없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용의자 접촉’ 지시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검증 전 단계의 내용을 사실처럼 제시해 여론을 호도하는 건 아주 나쁜 행동”이라는 취지의 언급은, 정부가 이번 사태에서 무엇을 문제로 보고 있는지를 비교적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날 공개된 김범석 쿠팡 Inc 의장 사과문은 결론을 앞세운 인상을 줬습니다.
“유출 정보 100% 회수”, “3000건으로 제한”, “외부 유포·판매 없다”는 단정적 표현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는 기업이 그 시점에 파악한 내용을 설명한 문장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사와 수사가 진행 중이고, 정부 역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라면, 결론을 확정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검증된 결과’로 오인될 여지를 키웁니다. 사과문이 ‘사실의 보고서’인지, ‘프레임의 설계도’인지 독자가 혼동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논점의 비대칭도 분명했습니다. 정부는 “(용의자가 컴퓨터로 내려받았다고 주장하는) 3000건 논쟁에 갇히면 안 된다”는 취지로, 핵심을 “(비인가자가 접근 가능했던) 3370만건 데이터의 행방”이라고 짚었습니다.
용의자가 보관했다고 주장하는 ‘발견된 일부’가 전체 유출 가능성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사건의 본질은 순식간에 좁아집니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현재 확인됐다는 숫자’라기 보다는, 유출된 데이터가 어디에 존재하며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2차 피해 가능성은 무엇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기업의 단정문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조사와 수사 절차를 통해 답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여기에 김범석 의장의 국회 청문회 불출석까지 겹치면서 ‘책임 있는 설명’이 설 자리는 더 줄어든 듯 합니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과잉 단정이 아니라 절제된 언어입니다. 확인된 사실은 확인된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남겨두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논점도 ‘3000건’이라는 편의적 숫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3370만건’의 행방, 피해자 보호, 보상, 재발 방지의 실체로 옮겨가야 합니다.
김범석 의장의 사과가 사과로 읽히려면 ‘먼저 말하는’ 전략이 아니라, ‘절차의 언어로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지금 쿠팡 사태가 요구하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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