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음식이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조리 직후보다 한 번 식힌 뒤 섭취했을 때, 포만감이 달라지는 식품이 있다. 뜨겁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온도 변화 하나만으로 씹는 시간, 위에 머무는 시간, 식후 반응까지 달라진다.
특히 바쁜 일상에서 간식이나 도시락으로 자주 먹는 식품일수록 이런 차이는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같은 재료, 같은 조리법이어도 언제 어떤 상태로 먹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은 달라진다. 차갑게 먹었을 때 포만감이 오래가고 식사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음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리 후 식혀 먹었을 때 달라지는 음식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1. 차갑게 먹을수록 씹는 시간이 늘어나는 '달걀'
달걀은 조리 온도보다 식힌 뒤 먹는 방식에서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삶은 달걀을 뜨거운 상태로 먹으면 부드럽게 부서지며 빠르게 넘어간다. 반면 냉장 보관을 한 삶은 달걀은 단백질 구조가 단단해져 한 번에 으깨지지 않는다. 그만큼 씹는 횟수가 늘어난다.
씹는 시간이 길어지면 포만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도 달라진다. 식사를 천천히 하게 되고, 적은 양으로도 배가 찬 느낌을 받기 쉽다. 뜨거운 음식보다 차가운 음식이 섭취 속도를 늦춘다는 점에서 달걀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삶은 달걀이 간식이나 도시락 메뉴로 자주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리 과정이 단순하고 보관이 쉬운 데다, 급하게 먹어도 과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 반으로 잘라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통째로 먹어도 부담이 크지 않다.
2. 덜 익은 상태에서 차갑게 먹는' 바나나'
바나나는 익는 정도와 보관 온도에 따라 장 건강도 크게 달라진다. 완전히 익어 말랑해진 바나나는 실온에서 바로 먹기 좋지만, 냉장 보관을 한 바나나는 조직이 단단해져 쉽게 으깨지지 않는다. 특히 아직 초록 기가 남아 있는 상태라면 차갑게 먹었을 때 식감 차이가 더 분명하다.
조직이 단단해지면 위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진다. 씹는 과정이 늘어나고, 포만감이 서서히 올라온다. 실온에서 바로 먹는 바나나보다 식후 허기가 늦게 찾아온다는 반응이 많은 이유다.
얇게 썰어 냉장이나 냉동 보관해 먹는 방식도 같다. 한 입씩 나눠 먹게 되면서 섭취 속도가 느려진다.
3. 식혔다 다시 먹는 '파스타'
파스타 역시 조리 후 식히는 과정에서 전분 특성이 달라진다. 삶은 직후보다 냉장 보관을 거친 뒤 섭취했을 때 소화 속도가 느려진다. 24시간 정도 식혔다가 다시 데운 파스타를 섭취한 실험에서는 식후 반응이 더 낮게 나타났다.
알덴테로 조리한 뒤 식히는 방식이 이런 차이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보고도 있다. 면이 덜 퍼진 상태에서 식히면 씹는 저항감이 유지된다. 차갑게 먹는 파스타 샐러드가 의외로 든든한 이유다.
같은 소스, 같은 양이라도 먹는 속도와 포만감은 달라진다. 냉장 보관을 한 파스타를 도시락으로 먹을 때 허기가 늦게 찾아오는 경험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4. 익힌 뒤 식혀 먹는 '고구마'
고구마는 조리 직후보다 식힌 상태에서 섭취했을 때 반응이 달라진다. 찐 고구마나 군고구마를 한 김 식히는 것만으로도 전분 일부가 저항성 전분으로 전환된다. 따뜻할 때보다 차갑게 먹었을 때 혈당 반응이 완만해졌다는 보고도 있다.
냉장 보관을 한 고구마는 식감이 단단해져 천천히 씹게 된다. 그만큼 포만감이 오래 이어진다. 샐러드나 도시락 반찬으로 썰어 넣었을 때도 배가 빨리 꺼지지 않는 이유다. 단맛이 강한 품종일수록 이런 차이가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달콤함은 유지되면서도 급하게 먹지 않게 된다.
5. 한 번 식혔다가 먹는 '흰쌀밥'
막 지은 밥과 한 번 식힌 밥은 전분 구조부터 다르다. 밥을 지은 뒤 냉장 보관을 하면 전분이 다시 배열되면서 소화 과정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저항성 전분 비율이 높아진다. 이런 변화는 하루를 채우지 않아도 나타난다.
냉장 보관한 밥을 다시 데워 먹어도 저항성 전분 일부는 그대로 남는다. 같은 양을 먹어도 식후 혈당 상승 속도가 완만해진다는 결과가 여러 차례 보고됐다. 밥을 완전히 차갑게 먹지 않아도 효과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일상 식단에 적용하기 어렵지 않다.
미리 지어 냉동해둔 밥이 밀프렙 식단에서 자주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리 시간을 줄이는 목적뿐 아니라, 식사 후 부담을 줄이려는 선택이기도 하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